첫눈이 내린 날, 늦은 밤에도 그 아파트 쪽문의 안과 밖에는 대여섯 명 되는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파트 주민이 지나가길, 그만이 가진 열쇠로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면서 추운 발을 동동 굴렸다.
드디어 늦은 퇴근길인 듯 보이는 한 남자가 다가와 전자키를 대고 문을 열어주었다. 추위에 떨던 사람들이 부리나케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오갔다. 그 사이 나는 한 발 물러서서 아파트 주민인, 즉 주인인 그가 먼저 들어가길 기다렸다.
“천천히 가세요.” 전자키를 인식기에 한 번 더 갖다 대며 그가 내게 말했다. 자동으로 닫히게 되어 있는 그 문은 여러 명이 느긋하게 지나갈 새 없이 금세 닫혔고 그는 사람들이 모두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 문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드나들었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항상 열쇠를 가진 이가 당당하게 걸음을 내딛고 나서야 다른 이들은 무언가 죄를 지은 것처럼 우줄우줄 따라 들어가곤 했다. ‘왜 자격도 없는 이들이 남의 땅으로 지나가려 하냐’는 듯 곱지 않은 눈초리와 몸짓을 굳이 드러내는 이들도 종종 보았다. 아파트 쪽문은 담을 두르고 문을 만든 인심처럼 재빨리 닫혀버려 사람들은 철문에 몸을 부딪히기 일쑤였다. 자동으로 일단 닫히기 시작한 문은 사람이 끼어도 다시 열리지 않곤 했다.
첫눈이 푹푹 내린 날 첫눈처럼 포근한 마음을 만났다. 늦은 귀갓길도 잠시 멈추어 서서 추위에 떨던 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먼저 지나가길 배려하는 마음. 내가 가진 것을 나만이 누려야 할 권리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나만이 가졌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끼며 다른 이들에게 내어놓는 마음.
그런 첫눈 같은 마음들이 산동네에서, 쪽방에서, 철탑 위에서, 저 멀리 강정에서, 차가운 첫눈을 맞이한 이들에게도 가닿길 기도하게 되는, 첫눈이 내리던 어느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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