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다름 이해
언젠가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한국 사회에 ‘단일민족’, ‘순수혈통’, ‘혼혈’과 같은 용어들과 더불어 인종 우월적인 관념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을 주목하면서, 한국 내 이주노동자, 외국인 여성배우자, 국제결혼으로 태어난 아동들의 인권문제를 집중 거론하며 한국인의 혈통주의를 비판한 일이 있었다. 또한 그와 함께 이주노동자와 혼혈아 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고 인종차별금지조약에 명시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관련 법규 제정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제는 우리나라 인종차별 문제를 유엔까지 나서서 지적을 하고 있을 정도라는데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일민족’, ‘백의민족’이 우리들의 상징이요 마치 순결한 처녀인 것처럼 우리들의 자랑거리로 말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소통과 화합의 시대를 맞아 그러한 표현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그런 표현 속에서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얼마나 많이 힘들어 하는가를 떠올려 본다면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 된다. 따라서 서로가 소통하고 통합하기 위한 지혜가 더없이 필요한 시기이고 또한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기 위해 열린 마음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때이다.
다문화가정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의 차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서로간의 다름일 뿐이다. 언어가 다른 것이 옳고 그름이 아니듯이 문화의 차이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서로 다름일 뿐이다. 그 서로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또 서로를 오해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 발달한 학문이 해석학이다.
하느님 말씀이 담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해석학은 필수다. 그 옛날 팔레스타인 지방에서의 예수님 사건과 말씀을, 21세기의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 안에서 단순한 언어 번역만으로 그 의미와 뜻을 모두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성서신학자들의 도움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 반세기 정도의 엄청난 성서학 발전을 통해서, 지금은 그 해석학을 밑바탕으로 한 성서신학의 도움으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또 묵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변화되는 오늘의 우리에게 있어, 예수님의 말씀과 뜻을 올바로 적용시켜 표현하고 또 이해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말 듣는 연습부터
끊임없이 변화되는 세상과 또 그 변화된 세상의 새로운 언어에 맞춰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시대에 맞게 늘 새롭게 해석하고 가르쳐야만 한다. 이때문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바로 ‘새로운 복음화’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 즉 복음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걸맞은 복음의 표현과 우리시대에 적합한 복음화의 전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씀이시다.
사회적 동물로 표현되는 우리 인간의 조건상,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면, 서로가 자신의 말만 일방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은 결코 소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전달함에 있어서도 그것이 예외가 될 수 없다. 지금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과 어떤 말과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모른다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반대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연습이다. 그래야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복음을 말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는 것이 먼저다. 그것을 우리는 열린 마음이라고 말한다.
창세기에 인간의 죄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간의 말을 서로 흩으셨다고 했는데, 요즘 우리들 삶은 가정 안에서부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우리들의 죄가 따로 따져볼 여지가 없다.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그분들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전통적인 가르침이고 또 분명 한국만의 좋은 미풍양속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현실 속에서 잘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만큼 지금의 세대 간 골은 깊고 대화는 단절돼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같은 방법의 신앙전수를 고집하고 있다면, 분명 시대착오적인 복음화의 방법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무조건 옳고 아빠, 엄마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말하는 그런 고정관념부터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있어 소통은 이루어지기 어렵고, 당연히 복음화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에 있어 권위주의적 복음화의 방법은 최대의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소통과 화합의 정신을 가르쳤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반 복음적 생각과 태도가 아닐까 싶다.
홍근표 신부는 1988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현재 서울대교구 사목국 부국장(노인사목담당) 겸 종로본당 주임신부로 봉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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