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쭙잖은 외국어 실력으로 허접한 우리말로 풀어놓은 번역서들을 읽다보면, 짜증이 나서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번역을 ‘창작’이라고도 ‘반역’이라고도 하는 걸 보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닌 듯하다.
순전히 재미로, 오역의 사례들을 한 번 찾아보았다. 우선 영화 제목의 사례가 흥미롭다. ‘가을의 전설’의 원제는 ‘Legend of the Fall’. 가을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 영화의 제목에서 ‘Fall’은 ‘몰락’ 정도로 이해된다. 한 가족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미국 현대사의 흐름 안에서 보여준다. ‘몰락’보다는 ‘가을’의 전설이 더 서정적이니 일부러 그렇게 한 듯하다.
일본 영화, ‘상실의 시대’ 영어 제목은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비틀즈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는데, 원래 노래의 뜻은 ‘노르웨이산 가구’란다. ‘사관과 신사’ 제목에 대한 번역 시비는 좀 좀스러운데, ‘An officer and a gentleman’에서 officer는 그저 학사장교나 사관생도 정도. 당연히 의도된 오역이겠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society’는 ‘사회’가 아니라, 작고한 시인들의 작품을 토론하는 ‘동호회’라고 한다. 유명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는 사실은 항공사인 ‘노스웨스트 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간다는 뜻.
제목의 오역은 문학 작품 가운데에서도 많다. 199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세이머스 히니의 시집 ‘The Spirit Level’은 ‘영혼 측정’ 혹은 ‘정신의 수준’이 아니라 ‘알콜 측정기’란다. ‘정념의 신비’로 번역된 아르누 그레방의 불어 작품 ‘Le Mystere de la Passion’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신비를 일컫는다. 헤럴드 핀터의 희곡 ‘The Dumbwaiter’를 ‘벙어리 심부름꾼’으로 번역한 것은 애교스럽다. 이는 음식이나 식기용 승강기를 말한다.
언론 보도에서 나타나는 오역은 종종 고의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교육을 치하하는 발언에 대한 보도를 두고, 한국의 교육 현실을 자화자찬으로 몰기도 한다. 지난 2009년 미국 학생들이 한국 아이들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한 달이나 적다고 한 발언을 두고 한국의 교육 수준이 뛰어나니 본받아야 한다며 긍지와 자부심으로 범벅된 기사들을 일부 언론들은 내보냈다. 그의 발언은 한국의 교육열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지만, 그의 교육 개혁의 방점은 오히려 “학생들이 일년 내내 규격화된 시험을 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그래서 부시 대통령이 도입한 ‘낙제학생 방지법’의 폐해를 없애자는데 있었다.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프로그램에서의 부분적인 오역, 한국과 아세안 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이나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비준동의안 등에서 나타난 심각한 번역 오류 사례, 한-미 FTA 비준 동의안에서의 번역 오류 등, 유력 방송 프로그램이나 정부 행정 문서에서 나타나는 오류는 심각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타임지의 strongman을 ‘실력자’로, 고의적으로 왜곡한 사례는 너무나 뻔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반역의 번역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번역과 해석의 오류는 우리 생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이 창작이든, 반역이든,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는 충분히 문맥의 의미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즉, 입으로만 신앙을 되뇌이거나, 이웃이나 형제자매들과 이루는 공동체의 맥락 없이 신앙을 말하는 것은 그냥 하느님의 뜻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직역에 그칠 뿐이다.
하느님 섭리에 대한 충분한 배움과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신앙을 실천하는 삶의 터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하느님의 뜻이 우리의 맥락에서 어떻게 다가오는지에 대해서 곰곰 성찰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언어를 우리 말로, 행동으로 번역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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