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시인이다. 하지만 나는 남들 앞에서 내가 동시를 쓴다는 사실을 잘 말하지 않는다. 인정받는 문예지 두 곳에서 등단하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또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기도 했지만 동시인이라고 말하는 일은 여전히 부끄럽고 겸연쩍다. 굳이 밝히지 않는다는 건 사실 숨기는 편에 가까울지 모른다.
“저는 동시를 써요”라고 말하면 상대의 표정은 금세 해맑아진다. 무지개, 꿈, 햇살, 희망, 초록, 이슬… 그러한 종류의 단어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게 보인다. 그리고는 곧 나를 한 점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양 바라보기 시작한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동시들은 그랬으니까.
요즈음 동시는 순수와 아름다움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고통과 절망, 불평등과 불합리까지도 노래하고자 한다. 동시가 어른들이 읽는 일반 시와 전혀 다른 종류가 아니고 단지 어린이가 읽기에 적당한 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하얀 도화지같은 순진무구한 존재이기보다 어린이 역시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질투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복된 성탄이다.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를 경배할 때마다 왠지 내 마음은 성스럽고 착해지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익숙한 성탄 성가가 울려 퍼지면 따뜻하고 친근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하지만 그것이 성탄의 참의미가 아니라는 것 또한 안다. 그런 신비감과 행복감은 비단 아기 예수만이 아닌 그 어떤 아기의 탄생에서도, 쌔근쌔근 잠이 든 그 어떤 아기의 얼굴에서도 느낄 수 있으니까.
‘아기’ 예수의 참의미인 ‘인간’ 예수의 신비를 깨닫는 것. 어린이를 순수한 ‘아기’가 아닌 온전한 ‘인간’ 존재로 바라보며 시를 쓰려는 나의 작업과도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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