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처럼 여겼던 일이 나에게 다가왔다.
최근에 위암을 만나 고뇌하면서 이마저 하느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무언가 ‘암’을 통해 암시하는듯함을 느꼈다.
수술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면서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내 삶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업에 영광스런 도구로 쓰였느냐고 반문해 봤다. 오로지 나를 위한 삶이었다. 이기심과 세상의 욕심으로 살아왔음에 회개의 기회를 주어 깨우침을 주기 위한 배려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이천 년에 가톨릭 신자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이 남들보다 특혜를 받은 양 우월감마저 들었다. 세례 이후 마라톤을 시작했다. 군에서 구보할 때 늘 낙오자의 대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부대 측정에서 10km 완전군장 구보가 우리 소대에 걸리면 소대장인 나를 다른 소대장으로 교체해서 측정을 받곤 했다. 그런데 지천명을 지나 마라톤 풀코스를 27회나 완주했으니 뜻밖의 기적이었다.
‘부산 썸머비치 울트라 마라톤’ 100km에 참가하여 밤새도록 달렸다. 하느님께 의지하면서 마라톤을 피정하는 기분으로 무사히 완주했다.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80km 지점에서 한계에 부딪혀 포기할까도 싶었다. 이때 하느님께 매달렸다. 완주를 도와주십시오. 오늘 레지오 선교 활동에 참여하여 복음을 전하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13시간 36분의 마라톤 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사워를 하고 밀려오는 잠과 고통을 참으며 기쁜 마음으로 선교 활동에 동참했다. 단원들은 깜짝 놀라며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그러나 마음 밑바닥에서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 입 밖으로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선교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 비몽사몽 세상 모르게 꿈의 세계로 빠져버렸다.
마라톤에 중독되어 헤어나지 못했을 때 무릎 부상을 주어 벗어나게 했다. 의사는 무릎 관절경 수술을 하면 일상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겠다고 했다. 수술 후 피나는 재활 훈련을 통해 지금은 등산도 하고 테니스도 즐기고 있다. 그러나 마라톤이 주는 즐거움을 달랠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이 필요했다.
신앙의 눈이 조금씩 열려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혼자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에는 벅차 습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지인의 도움으로 「피안의 그곳」이라는 산문집을 내놓기도 했다. 제대로 배우고 익힐 기회가 왔다.
수필 창작 대학에 입문하여 수필 쓰기에 매달렸다. 수필은 체험이고 고백적인 문학이다. 수필을 통해서 나를 발견했고 자아 성찰로 마음의 수양과 새로운 세상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교수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등단했고 수필집 「질주」가 출간되었다. 글로서 나를 통해 하느님의 세상을 알리는 도구로 써지기를 간구하고 있다.
또 신앙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어버이성경학교’에 몰아넣었다. 수녀님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으로 전해져 나날이 행복함과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말씀이 귀가 씻겨 마음으로 켜켜이 내려앉는다. 이 엄청난 축복을 받고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 날 붓 펜을 들었다. 190여 쪽에 달하는 사대 복음 말씀을 썼다. 두 달여간 힘들었지만 마지막 복음을 쓰고 붓 펜을 놓을 때는 얼마나 기쁨과 감동이 북받쳐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내가 소속한 직장에 새로운 경당을 지어 축복식에 복음 필사를 봉헌했다. 하느님은 축복식 날짜에 맞추기 위해 그렇게 나를 몰아갔나 싶었다.
이처럼 하느님은 나에게 귀와 마음을 열어주셨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턱없이 모자라고 부족한 나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 보이라는 것일까. 내 삶을 통해 그들이 본받도록 해야 한다는 말인가. 부족함이 나를 옥죄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더 말씀을 좇아 참삶을 배우고 익혀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감히 나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받은 은총과 사랑을 되돌려주는 길이지 싶다. 하느님의 사랑에 내가 느끼는 이 기쁨을 이웃과 함께하기를 바라며 두 손을 모은다.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의 삶을 좇아가게 해 주십사고. 하느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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