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의 불편함
<신입 직원은 참석 자체로 빛이 나고, 과장님은 2차까지만 가셔야하고, 부장님은 1차에서 떠나셔야하고, 관장님은 참석치 않고 전화로 “어, 오늘 내가 좀 바빠서 참석하기 어렵겠네. 내 알아서 계산 할 테니 맛있는 거 먹도록 해요”라고 할 때 가장 빛이 나는 것은?>
눈치 채셨죠! 정답 ‘회식’입니다.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 술자리도 많아집니다. 직원들 간에도 한 해를 정리하기 위하여, 가는 해가 아쉬워서 부서별로 회식 자리가 잦아집니다.
관장은 이런 자리에 눈치껏 빠져 줘야지 직원들이 좋아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손위 어른들과 식사자리라도 하면 조심되기는 누구나 같습니다. 신자이든 직원이든 식사자리에 가면 신부님 옆에는 잘 앉지 않으려합니다. 그러다보니 괜한 분위기 전환용 우스개로 “내 옆에는 뭐가 묻었나?”라고 하면 분위기는 더 썰렁해지고, 마지못해 제일 젊은 직원이 벌서듯 제 옆자리에 앉습니다.
회식이 시작되고, 제가 고기라도 구울까 하고 집게를 들면 큰일납니다. 두어 칸 떨어진 곳에 앉은 고참 직원이 어떻게 알고 옆자리 신참들에게 눈총을 마구 쏘아 댑니다. ‘어디 감히 관장 신부님께서 집게를 들도록 하느냐!’라는 뜻입니다. 도리어 제가 눈총에 맞은 듯 쑥스러워져서 집게를 놓고 술잔을 듭니다.
그러면 한 직원이 큰소리로 전 직원을 독려합니다. “신부님께서 잔을 드셨어요. 우리도 함께 한잔합시다.”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이 잔을 부딪치며 저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또 멋쩍어져서 술을 ‘원샷’하면, 술잔을 입에 댔다가 내려놓던 직원들이 다시 잔을 들고는 벌컥벌컥 ‘원샷’을 합니다. ‘관장 신부님께서 잔을 다 비우셨는데 나 같은 직원이 어떻게 잔을 베어 먹는다는 말이냐!’는 듯이. 이래저래 회식자리에는 관장이 빠져주는 것이 본인도 편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줍니다.
이쯤 되면 울리지도 않는 전화기를 꺼내들고 일부러 큰소리로 말합니다. “어, 그래. 오늘 만난다는 걸 내가 깜빡했네”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직원들이 우르르 따라 일어나면 자리에 앉으라는 시늉을 하며, 약속을 깜빡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라면 끓일 물을 올리며 생각합니다. “쩝, 다음부터는 회식 안 가야지….”
회식 문화의 변화
요즘은 회식 문화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고기 집에서 술을 낫게 마시고 제대로 깨져야 ‘좋은 회식’이었다고 하던 시대는 흘러가고 있습니다. 볼링을 치러간다든지, 영화를 보고 와인 바에서 와인을 홀짝거리며 영화평을 나눈다든지, 장소도 맛집이나 특이한 곳을 직원들의 투표로 뽑아서 가기도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차를 가진 분들이 대부분이라서 대리운전기사 부를 걱정에 자제하게 됩니다(연말에 대리운전기사 모시기는 하늘에 별 따기 입니다).
회식 문화가 바뀌어 가는 것은 제 개인 생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는(아직 회식 자리에 가면 차는 버릴 각오를 하고 술을 퍼마셔대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직원들이 싫어하나?!).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면 어쩌겠습니까. 받아들여야지요.
천주교 신자들은 술을 잘 마신다?
얼마 전 신문에서 통계를 보았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우리나라 성인들의 주량을 조사한 결과, 소주 1병 이상의 주량을 갖고 있다는 사람 중 종교가 천주교인 사람이 39.3%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무교 36.1%, 불교 25.6%순이었다. 기독교 신자는 17.5%로 가장 적었다”라는 것입니다.
이 통계를 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특히 비신자를 만나서 술자리를 하면 꼭 “신부님들께서는 술이 세시던데요”라는 말을 듣습니다. 저는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센 술 실력을 보여주며 흐뭇해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신부님들은 술 센 사람들이 되었을까요? 술이란 많이 마시면 실수할 수밖에 없는 ‘독’인데 말입니다. 앞으로는 ‘천주교 신자들이 술을 제일 못 마신다’는 기사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저도 술을 끊어야겠다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이것 참! 끊기에는 뭔가 허전하고, 새해 새 결심, 금주 결심을 아니 할 수도 없고… 그래도 줄이긴 줄여야겠죠. 여러분들도 술을 완전히 끊지는 못해도 좀 줄이실 거죠?
백남해 신부는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 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진주지역자활센터장 겸 아름다운 가게 담당, 병원사목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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