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 서늘한 기온과 함께 풀벌레 울음소리가 유난스럽던 가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정신없이 바쁜 직장에서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안고 평일 미사에 참례하려면 저녁식사를 뒤로 미뤄야 한다. 그날도 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성당 문을 나서려는데 연령회 총무를 맡고 있는 우리구역 자매님이 “연도 하러 갑시다”라고 말을 건넸다. “네?! 아직 저녁밥을 안 먹어서요”하고 핑계를 대면서 말끝을 흐렸더니 “내가 빵하고 우유 사줄테니 가자”라고 하시며 옷깃을 잡아 당겨서 마지 못해 따라나섰다.
그런데 그날은 연도 내내 하느님 원망만 하다가 왔다. 사연인즉, 우리 본당에서 여러 해 동안 반장으로 봉사해오신 자매님의 아들이 과로사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혼 2년차에 돌이 지난 아들과 뱃속에 동생이 자라고 있는데…. 장례식장에는 어린 상주 대신 어머니가 문상객인 우리를 맞아 주셨다. 이 세상에 자식 앞세운 부모에게 어떤 위로의 말이 있을까? 그저 마주 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다.
아! 하느님의 뜻은 무엇이길래 이토록 가슴 절이게 하는 것일까? 연도를 하는 내내 머릿속이 하얘지기만 했다.
이천년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안은 성모님의 심정이 이러하셨을까? ‘피에타’상이 따로 없었다. 이 모습 그대로가 오늘날의 ‘피에타’상 이리라.
자식을 생각하는 본질이며 이 세상에서의 모성은 영원한 사랑의 테마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가을이 깊숙히 우리들 가까이로 스며들어 왔다. 평일 저녁미사에서 다시 그 자매님을 만났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는데 예전의 그 얼굴빛이 아니었다. 미사가 끝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려서 기도하느라 일어서질 않는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 여인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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