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12월 26일 인천 석남동에 개소한 ‘무지개 이주민 상담소’를 취재했다. 초행길에는 찾기 어려운 주택가 가정집 지층을 전세로 얻어 개소 축복식을 한 지 일주일이 됐을 때였다. 상담소장을 맡은 인도출신 에밀다 수녀가 가져다 놓은 몇 가지 성물들이 이곳이 신앙 공동체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에밀다 수녀는 1989년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25년째 살다 보니 지금은 한국어를 한국인 못지않게 잘한다. 수도자였기에 한국말 한마디 모르고 한국에 왔어도 많은 이들의 친절한 도움을 받았겠지만 낯선 이국땅에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이다. 이것이 에밀다 수녀가 이주민 상담소를 개소한 이유인 듯 했다.
무지개 이주민 상담소는 베트남, 파키스탄, 네팔, 필리핀 등에서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와 그들의 자녀들을 돕고자 문을 열었다. 상담소에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일은 그들을 위한 한글교육이다. 고용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에도 행정 절차를 대신 맡아 권리구제를 도울 것이라 한다.
에밀다 수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들이 본국에서는 고등교육자라는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 교육 수준도 높고 돈도 좀 있는 이들이라야 한국에 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꿈’을 이루는 이주민은 흔치 않다고 했다. 이주민 자신에게도 한국 문화에 적응실패 등 원인이 있지만 그보다는 이주민들을 얕보고 무시하는 한국인들에게 더 큰 잘못이 있다는 설명이다.
며칠 전 차 안에서 주파수를 맞추다 우연히 라디오 강론을 듣게 됐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라고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면 혈연과 지연에 매달리면 안 된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요지였다.
우리나라에서 이주민들이 처한 현실을 보며 신앙보다 혈연과 지연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잠시 고민하게 됐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