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포신(除舊布新).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것을 펼쳐낸다’는 뜻이다. 교수신문은 전국 대학교수 6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제구포신이 2013년 새해 사자성어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춘추좌전’에 나오는 이 말은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자 노나라 대부 신수가 이를 제구포신의 징조로 해석한데서 유래했다. 혜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길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는데, 오히려 이를 변혁의 징조로 본 것이다. 옛 선현들은 “낡은 것이라고 다 버릴 것이 아니고 새것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며 옛것 중에도 다시 돌아볼 것은 돌아보고 새것도 폐단은 미리 막아내려 했다. 이것이 진정한 제구포신의 정신이다.
나쁜 폐단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한다는 ‘쇄신’(刷新)과 같은 의미다. 요즘 우리나라 곳곳에서 쇄신이란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너도나도 쇄신을 외친다. 진정성과 변화에 대한 의지 없이 단순히 위기 탈출용으로 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필자는 지난해 연말 신년특집 대담을 위해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님을 예방했다. ‘신앙의 해’를 지내는 우리 교회와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집중 진단해보는 자리였다. 이날 주교님이 교회 어른으로서 하신 말씀은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분의 일성(一聲)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미 신문을 통해 소개 됐지만, 주교님이 하신 말씀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 내용을 독자들과 다시 한 번 나누고자 한다.
“우리 교회에서 위기를 말하는 많은 목소리가 있습니다. 신앙과 삶을 분리해 사는 모습은 심각합니다.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젖어든 우리 삶의 패턴이라고나 할까요. 우리도 모르게 젖어든 그런 경향, 이러한 이유로 결국 신앙이 요구하는 삶의 쇄신과 회심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자로 살아가면서 당연히 예수님을 믿고 고백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요즘 신자들은 믿을 교리를 주로 머리로 알아듣고, 성총을 얻는 방법은 형식적으로 몸으로 따라하고, 지킬 계명은 실천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지킬 계명이 삶 속에서 구현이 돼야 하는데 단지 계명 조항으로만 남아 있고, 신자들의 일상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끊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 따로, 삶 따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다. 이를 바로 잡고 올바른 신앙인의 길을 가는 것이 쇄신일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신앙의 해’를 선포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에겐 철저한 성찰을 통해 잘못된 신앙태도를 깨닫고 이를 새롭게 바로 세우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혜성을 불길함의 상징이 아닌 변혁의 징조로 본 것처럼, 우리도 현 교회의 위기를 신앙의 해를 통해 새롭게 쇄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통상 성당을 다닌다고 말한다. 하지만 형식적인 종교행사로 성당에 다닌다면 훗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힘들지 않을까. 성당만 다닌다고 구원이 저절로 들어오진 않는다. 성당 자체가 구원의 방주는 아니다. 끊임없는 쇄신과 실천이 요구된다.
쇄신이 성공하려면 스스로 죄인이라는 자기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군림과 아집의 자세는 철저하게 배척돼야 한다. 임시방편의 쇄신은 부작용과 도전에 직면하고 스스로를 약화시킬 뿐이다. 현실에 안주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연명한다면 결국 실패한 신앙인이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꿈꾸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신앙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먼저 실천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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