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미국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그간의 학살극들과 다르지 않다. 20명의 어린이가 희생됐다는 점은 슬픈 일이지만, 누구나 쉽게 총기를 구입할 수 있는, 이상한 나라 미국에서는 언제든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열흘 후 범인의 무기와 같은 종류의 총기 탄창이 엄청나게 팔려나갔다고 전했다. 희한한 일이다. 한쪽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호소대로 총기를 반납하려는 시민들로, 다른 한쪽에서는 총기 탄창 가격이 오를까봐 사재기를 하려는 사람들로 번잡했다.
이번 사건 역시 무분별한 총기 소지와 그로 인한 비극을 막는 계기는 못될 것이다. 이 전망은 누군가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니 자신도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서부개척시대에 생긴 웃기는 전통 외에, 미국 정치가 무기산업의 강력한 로비력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으로 강화된다. 미국에서 절대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것 중 하나가 민간인 총기 소유이고, 그것을 관철하는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이다.
막대한 정치자금을 대는 총기와 담배업체들의 파워에서 짐작되듯, 인권, 자유, 민주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미국은 사실 극소수 권력 집단에 의해 견고하게 구축된 구조에 의해 운영된다. 이 딴딴한 구조는 다양하게 유지되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얻을 수 있는 범국민적 각성 따위로는 바꿀 수 없어 보인다.
심리학자, 사회학자인 윌리엄 덤호프는 「Who Rules America?」라는 저서에서 권력과 부가 고도로 집중된 미국의 현실과 그 구조가 유지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상류층은 각종 연구소, 재단과 기금, 정부 위원회, 학술 단체, 일류 대학교, 초국적 기업의 이사회 등 모든 종류의 사회적 연결망과 공공연한 권력 수단을 통해 자신들 이익을 관철할 수 있도록 사회 구조를 구성한다. 더욱이 음모를 통해서나 비밀스럽게 하지 않고, 공식적이고 합법적으로 그것을 수행한다. 결국 그는 시민사회나 지역사회의 부분적 각성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 구조의 변화에 대한 기대는 부정적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해묵은 지역감정,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 우호적인 탄탄한 정치 및 경제적 권력 구조, 재벌 중심 경제 정책과 구조, 서민 삶에 무심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자비한 압살에 대담한 정신 상태, 근현대 한국사의 오점 청산에 대한 무감각, 여기에 골이 깊어지다 못해 양극화된 세대간 갭이 더해진다.
교회나 신앙은? 필자 자신을 보면, 과학적 지식이나 경험적, 실증적 검증으로 밝힐 수 없는 신앙의 진리에 대해서 여전히 전폭적 동의를 하지 못하는, 미적거리는 태도가 그 하나이다. 여기에 이제는 여하한 신앙의 열의나 열정에도 무감해진 나태가 더해진다.
공동체적으로는? 수동적이고, 구원의 공동체성을 상실한 현실적 위안과 도피로서의 신앙관에 매몰된 평신도들의 신앙 자세,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고압적인 성직 중심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성직자,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종교 시장에서 탁월한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교회 등등, 어쩌면 한국 천주교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쇄신과 혁신, 회개와 통회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민간인들이 총기를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그래서 다시는 어린 생명들이 이유 없이 학살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한국교회가 근본적인 쇄신을 해나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까, 혹은 쉬울까? 관련해서, 우리는 과연 ‘신앙의 해’를 얼마나 진지하게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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