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에 성공한 영화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예술적으로는 뛰어난 영화가 아니라 해도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를 지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는 건 무척 기대되는 일이었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패한 야권 지지층의 허탈함을 이 영화가 어떻게 ‘힐링’해 주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내가 이 영화에서 눈길이 갔던 부분은 뜻밖에도, 가석방된 죄수 장발장을 쫓는 자베르 경감의 신앙이었다. 무자비하고 폭압적인 법의 집행자인 그는 자신의 삶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굳게 믿는다. 장발장이 어둠의 길을 걷는데 반해 자신의 길은 하느님의 길(But mine is the way of the Lord)이라고 확신하며 하느님께서 힘을 주셔서 정의를 수호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그는 하느님을 져버린 자가 아니었다. 하느님을 믿는 자였다. 자베르는 과연 어떤 하느님을 믿었을까.
장발장의 하느님은 어떤가.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증오로 가득찼던 그는 미리엘 주교와의 만남 이후 하느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고뇌한 뒤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그의 하느님은 자비와 용서, 사랑의 하느님이었다. 그러기에 장발장은 양녀 코제트에게 자신의 삶을 헌신한다. 혁명군에게 포로로 잡혀 곧 죽게 될 상황에 처한 자베르를 풀어준다. 코제트와 그의 연인 마리우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이겠다고 기도하는 그를 보면 예수님의 사랑과 죽음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느님 상은 저마다 다른 듯 보인다. 나의 하느님은 자베르의 하느님인가 장발장의 하느님인가. 혹시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은 테나르디에 부부처럼 그저 세속(돈)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안의 자베르, 테나르디에와 대면하고 날마다 새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의 오늘은 ‘민중(people)’의 ‘내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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