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꿈을 꾸고 이룬 사람들
“작은 꿈을 꾸지마라(no small dreams).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한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시카고에서 들었는데, 거대 도시 시카고의 발전 과정에서 도시계획 책임자가 이를 인용하여 “작은 계획은 세우지 말라(no small plans)”는 모토를 내세웠다고 합니다.
우리는 큰 꿈을 이룬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전쟁을 통해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나 칭기즈칸, 피라미드와 만리장성과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든 파라오와 진시황,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큰 꿈을 꾸고 이룬 사람들입니다. 괴테가 생각한 ‘큰 꿈’이 이런 물리적인 규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오늘날도 많은 이들이 작은 계획보다는 큰 계획을 통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위대한 유산을 남기려고 꿈꾸고 있습니다.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런데 큰 꿈을 꾸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전폭적인 지지나 절대적인 권력, 풍부한 재정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 반대를 잠재울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시작했다면 끝을 봐야 합니다. 지도자의 배짱과 뚝심, 자기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다보니 큰 꿈, 큰 계획은 종종 큰 문제점들을 함께 가져옵니다. 우선 그 목적이 업적주의, 영웅주의, 마초주의에 물든 권력자의 욕심과 소수의 이권이 맞물려 변질되는 경우가 많고, 반대와 우려를 넘어서기 위해 소통을 막고 실력행사에 들어가다 보면 많은 이들이 소외되고 함께 꿈꾸는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바벨탑의 죄는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사람들의 힘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시기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어느 성서학자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땅을 가득 채워라’(창세 1,18), 즉 세상에 퍼져서 살아가라고 하셨는데 이들은 그것을 거역하고 사람들을 모으려 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들을 손수 흩으셨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약하기에 서로 사랑하고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하나가 되도록’(요한 17,11)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바벨의 지도자들은 신을 능가하려는 자신들의 야심을 위해 ‘우리가 뭉치면 못할 것이 없다’며 사람들을 선동하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뭉쳐서 세력을 형성하고 ‘큰 일’을 해내려고 하는 계획에는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기 쉬운 위험이 너무 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은 꿈부터 함께 꾸고 이뤄야
그러면 ‘큰 꿈’을 꾸면 안 되는 걸까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큰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꿈은 어떻게 꾸어야 할까요? 저는 우리가 작은 꿈을 함께 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지만 함께 꾸어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꿈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비전이 그런 꿈이었습니다. 정치적인 혁명이나 천지개벽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나 누룩과 같다.’(루카 13, 18~21),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고 말씀하십니다. 준엄한 심판이 이루어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권력의 한 몫을 잡는 그런 왕국을 기대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으며(요한 3,17), 가장 높은 이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마태 23,11)
이 하느님 나라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이룰 수 없습니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소수의 권력이나 지시나 통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사랑과 인내와 배려를 통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것은 이제 누구도 기대하지 못하던 큰 꿈이 됩니다. 모두가 함께 꾸고, 이루고,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누군가가 큰 꿈, 큰 계획을 들고 나와도 미덥지가 않습니다. 헛된 희망에 사람들은 더 갈라지고, 소수의 배만 채운 끝에 후대에는 흉물스런 유산만 남기는 것이 아닐까 걱정됩니다. 하지만, 그대신 모두가 서로를 믿고 서로 기대면서 함께 궁리하고 모색하여 만들어가는 그런 꿈이라면, 한바탕 함께 꾸어볼 수 있었으면 하고 소망해봅니다.
변승식 신부는 1994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현재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장·주교회의 사무국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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