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를 앞두고 있다. 우리는 40일 동안 금욕과 절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 꽤 많은 이들이 이 기간 동안 술이나 담배 끊기 등을 하면서 자신을 괴롭힌다(?). 물론 대부분 길게 못 가지만.
하지만 이 40일은 마침내 부활의 영광을 희망하고 확신하는 것이기에 본질적으로는 기쁨과 환호의 시기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을 방랑하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음으로써 약속의 땅으로 들어섰듯이, 사순시기는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동참함으로써 마침내 얻게 될 영광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지난 1월 25일,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 취임식이 열린 나흘 뒤, 워싱턴시는 또 다시 수많은 인파로 뒤덮였다. 1973년 1월 22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린 이른바 ‘로 대 웨이드’ 사건 이후 매년 열리는 ‘생명의 행진’이 40주년을 맞았다.
40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낙태 반대’, ‘생명의 문화 건설’이라는 구호의 열기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매년 더 거세지고 있다. 더욱이, 세속적인, 자유주의적인, 쾌락적이거나 선정적인 삶의 방식에 더 끌릴 법한 젊은이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는 모습은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의외였다.
꼬박 24시간을 버스로 이동해 행진에 참가한 한 젊은이의 참가기가 인상적이다. 그는 버스 안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아기들을 위해서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물병과 사과로 볼링을 하고, 장난과 수다로 시끌벅적한 와중에도 그들은 “이 긴 여행은 우리가 겪은 어떤 싸움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프로라이프의 역사, 태아의 생명을 두고 벌인 이 싸움은 사실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큰 성과를 거둬 왔다. ‘생명의 행진’은 오늘날 워싱턴 뿐만 아니라 그 위쪽의 뉴욕시,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와 캐나다 오타와, 아일랜드 더블린까지, 연대 세력을 결집했고, 한국에도 지난해 열린 생명 대행진에 영향을 주었다.
이냐치오 카라스코 데 파울라 주교라는 긴 이름을 가진 교황청 생명학술원장은 이 행진을 일러 “전세계의 모든 가톨릭 나라들에 매우 중요한 역사적 준거가 됐다”고 말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요즘 즐기시는 트위터를 통해 이 행진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지금은 은퇴한, 80세의 덴버대교구장 출신 프랜치스 스태포드 추기경은 대법원 판결이 난 뒤, “미국이 더 이상 내 나라로 생각되지 않는다”라는 말 까지 했다. 그는 특히 애당초 미국의 정치문화, 특히 ‘자유’에 대한 이해에 결함이 있었다고 말한다.
즉, 자유는 18세기 계몽주의가 말하듯, ‘주체적 개인이 그것이 무엇이든 여러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자유라는 그릇된 이해로 말미암아, 미국은 흑인을 덜 고귀한 존재로 여겼고, 인종 차별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태아를 생명이 아니라고 부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의 낙태 반대 운동의 대표적인 모자보건법이 공포된 것도 1973년 2월 8일, 미 연방법원의 판결이 난지 불과 2주 후이다. 한국의 생명 수호 운동 역시 40년을 지나고 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지만, 약속된 땅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어쩌면 40년 동안 생명운동을 이끌었던 어른들은 낙태가 사라진 생명의 땅을 못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순이 부활로 이어지고 광야가 약속의 땅으로 이어졌듯이,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이들이 헌신하고 투신했던 생명에 대한 확신은 결국 그 빛을 얻을 것임을, 캔사스에서 워싱턴까지 24시간을 버스 안에 머물렀던 젊은이들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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