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사임을 둘러싸고, 서구의 세속 언론들은 교황의 목자로서의 고뇌에 대한 공감보다는 사제들의 어린이 성추행, 이른바 ‘바티리크스’(Vatileaks), 교황청 내부의 권력 투쟁 등의 스캔들이 교황 사임의 직접적인 동기이기를 바라는 듯한 태도의 보도를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언론의 선정적, 악의적 호기심에 대해 교황청 전문가인 존 L. 알렌 주니어는 최소한 이런 추문들이 교황 사임 결정의 배경 중 하나일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이런 추문들, 특히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들에 더해서, 그 재위 중에 발생한 많은 시끄러운 일들이 사임 결정에 전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좀 솔직한 일이 아니라는 취지를 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탈리아의 언론인 안드레아 토르니엘리는 포르투갈 출신 호세 사라비아 마르틴 추기경의 말을 빌어 ‘바티리크스’ 등 지난 수년간의 스캔들이 교황 사임에 영향을 주었을 개연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에게서 이런 류의 ‘고백’이 나온 것은 조금 드문 일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조금 더 공정해지려고 노력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난관과 어려움들이 교황의 사임에 영향을 준 시대적 배경이나 징표의 한 가지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측면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해도, 마치 그것이 사임의 직접적 동기인 것처럼 진단하는 것은 선정적인 과장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필요하다면, 어쩌면 교황청도 이른바 쇄신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적극적이고 철저한 영적 쇄신이 필요하기도 하겠다. 세상은 어디나, 교회는 언제나 천사들의 모임이 아니라 죄많은 인간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러한 스캔들의 요소들은, 여전히 지구촌에 빈곤하게 사는 이들이 많다거나, 낙태가 좀처럼 줄지 않는다거나, 냉전 이후에 더 빈번해진 국지적 분쟁의 현실, 혹은 신앙을 위협하는 현대 세계의 상대주의적이고 세속주의적인 경향 등등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백번 양보해 교황청 내에 세속적인 다툼의 흔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찌 교황이 자신의 교황직 수행을 온전하게 포기하는 결단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투덜거리듯이 이야기하자면, 교황님께서는 고민할 일이 많으시다는 것.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전히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은 갈수록 점점 더 찢어지게 가난해지고 있는 세계의 현실은 로마의 주교를 피곤하게 한다. 그렇게 자고 깨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말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자고 목이 터지게 당부를 해도, 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더 크게 반격을 해오는 반생명적 목소리들에 귀가 따갑고 맘이 부대낀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아! 좀 더 왕성한 체력과 좀 더 또렷한 정신과 열성을 가진 후진들이 좀 더 활동적으로 이런 저런 교회 안팎의 일들에 대해서 대응하고 대처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어쩌면 교황 성하의 사임의 동기는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저런 할 일들, 시급하게 처리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현대 세계와 사회의 각종 이슈들에 대해서, 하느님 백성의 선익을 위해서 더 많은 할 일들이 있는데 ‘몸과 마음의 힘’이 따라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간적 한계 앞에서 교황은 사임이라는 선택을 해야 했던 것이리라.
교회 안의 부끄러운 속살들에 대한 지적과 쇄신의 요청은 당연히 기꺼운 마음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며, 밖을 향해 소리칠 뿐만 아니라, 안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적어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교황직 사임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세속의 정치 권력 구도, 무엇인가 어둡고 음침한 암투와 음모의 시선으로 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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