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이란?
중산층(middle class)이란 정의는 나라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이른바 선진국 중산층의 공통점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불법, 부정에 저항하거나 공적인 분노에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중산층의 경우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비판지가 있고, 영국의 경우 페어플레이를 하며, 프랑스의 경우 악기를 다루거나 외국어를 하나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특이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중산층은 30평 이상 아파트 보유,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1억 이상의 예금 잔고, 중형자동차 보유 정도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중산층이란 개념 역시 교육적이고 역사적인 산물이며 바뀔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중산층의 부상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크게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다. 잘 사는 사람은 집도 있고 밥 먹고 사는 걱정이 없으며 자녀 교육을 위해 과외를 시킬 수 있는 부유층이고, 못사는 사람들은 집이 없어서 6개월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고 쌀보다 보리가 많은 밥이나 조밥, 감자 혹은 외국에서 지원받은 밀가루 국수 등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다.
1960년대 초반 장면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의 청사진을 접수한 박정희 정권은 수출지향적 경제개발정책을 진행하면서 수출상품의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하고 대기업을 비롯한 수출기업에 엄청난 금융 및 세제 혜택을 준다. 그 결과 오늘날 삼성, LG, 현대 등의 대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저임금 중심의 수출경제정책의 결과 1985년의 임금소득 분포도는 노동자의 50%이상이 평균이하의 저소득층에 밀집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87년도 민주화와 임금 및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투쟁의 결과는 전혀 다른 변화를 보여준다. 1995년에 노동자 중 평균 임금소득에 해당하는 비율이 50%이상 형성되다가 IMF 정리해고 등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진행되었던 2005년에는 평균 임금소득자가 확연하게 감소한다. 2011년에는 다시 87년 민주화혁명 이전의 모습과 같이 평균이하의 저소득층에 50%이상의 노동자가 밀집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평균 이상의 임금소득자 집단을 단순하게 경제적인 중산층이라고 말한다면 80년대 말 이후 중산층이 괄목할 정도로 증가한 것은 경제개발정책의 단순한 결과라기보다는 경제개발과 이에 따른 국민의 민주화 요구, 그리고 경제발전의 과실에 대한 분배 요구, 즉 노동자의 임금조건 투쟁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중산층의 몰락과 복원
1997년 IMF사태 때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토대로 유연한 노동시장정책과 정리해고를 실행했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노무현 정부에서 FTA 논의를 바탕으로 조금씩 심화됐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본산인 미국보다 더 심화됐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25.7%로 미국의 24.6%보다 높고 OECD 평균치 16.3%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2009년 자영업자 총수는 약 230만에 가까우며 이는 OECD평균의 2배에 해당한다. 앞으로도 정리해고가 계속된다면 40대 이상 하우스푸어와 중고령층을 포함하여 수천만 명의 가족이 평균이하의 근로소득으로 생활하게 될 것이라 예상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중산층 복원의 최우선 과제는 지난 15년간 지속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의 평가와 더불어 이와 차별화된 정책 기조를 마련하는데 핵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에는 경제성장의 과실을 나누기 위한 노동조합의 투쟁이 중산층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면 2013년 이후에는 새로운 차원의 사회 협약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기업의 정리해고 금지조항이 포함되어야 하고 둘째,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상생의 사회협약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여겨진다. 이탈리아의 경우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이 6%에 불과한 것은 다름 아닌 30%이상의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의 힘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경제, 배려의 경제, 제3섹터의 확장 정책이 한국의 중산층 복원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제 우리의 중산층 기준에도 선진국처럼 사회적 약자를 돕고 사회 불의와 불법에 저항하는 용기도 포함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한국인 가운데, 특히 그리스도인 중에 이러한 중산층의 개념에 해당하는 비율은 얼마나 늘어날까? 궁금해진다.
문의 메일 aquinascho@hanmail.net
조은상(토마스 아퀴나스)씨는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서울흥사단 부대표·좋은세상행복연구소 소장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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