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웠던 올해 겨울
제가 살고 있는 중곡동 주교회의 건물 옆에는 메리놀 선교회 본부가 있는데, 그 담장에는 개나리가 길 쪽으로 탐스러운 가지를 뻗고 있습니다. 해마다 2월이나 심지어는 1월, 겨울이 한창인 중에도 며칠만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 노란 꽃 한두 송이가 피어나서, 우리는 그걸 보며 “저런 철없는 것들”이라고 놀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유난히 추웠던 날씨 때문인지 2월이 다 가도록 단 한 송이의 개나리꽃도 볼 수가 없습니다.
머릿속으로는 “그래, 이게 정상이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아주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철모르고 고개를 내밀었던 그 꽃송이들은 사실 우리 생각처럼 자연의 시행착오나 실수가 아니라 자연의 유연한 실험이고 세심한 깨어있음이 아니었나 하는 성찰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계절의 반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지만 사실 지구의 기후는 길게 보면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마음대로 자리를 옮길 수 없는 식물들에게 그것은 생존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겨울 중에도 따뜻한 기온이 이어지면 한두 송이 꽃을 피워 이것이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었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었겠다고 생각이 됩니다. 비가 그친 후 노아가 방주의 창으로 비둘기를 날려 보낸 것처럼 말입니다.
올해는 겨울답게 날씨가 추워서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 생각하다가, 문득 겨울이 내 생각을 들으면 “나다운 게 뭔데?”하며 발끈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은 추운 것이라 하지만 그건 평균기온이 그렇다는 것이고, 삼한사온이라는 말 대로 겨울에도 따뜻한 날들이 있는 것이 더 우리나라의 겨울날씨다운 것이 아니었나 싶어서 말입니다. “나 그렇게 차가운 것만은 아니라고!”라는 겨울의 항의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러면 내가 느낀 섭섭함은 겨울날씨답지 않게 춥기만 했던 지난겨울의 날씨 때문이었던 걸까요?
믿음과 사랑 가득한 사회
아니, 그것은 한 두 송이 개나리꽃도 허용하지 않은 그 날씨가 여유 없고 각박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춰주는 듯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성숙한 사회는 서로 다른 의견을 잘 수용합니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며, 모든 이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두려워하거나 불편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우리들은, 그 반대편으로 많이 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대선 때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이 나라가 당장 망하는 것처럼 사생결단으로 대립하던 모습이며, 삶의 터전을 지켜보겠다고 나선 이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모습,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사찰하며 그 사상을 검증하려 하고, 낙서나 인터넷, SNS, 심지어는 개그 프로그램에서조차 거슬리는 표현이나 행동들을 문제 삼고 고발하기도 하는 우리 사회의 경직된 모습이 그야말로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아 안쓰럽습니다.
이런 경직되고 각박한, 여유나 관용이 없는 마음은 두려움에서 옵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 사도의 말씀대로 “사랑은 두려움이 없습니다.”(1요한 4,18) 거리낌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믿고, 다른 이의 선의를 믿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나와는 다른 생각도, 표현도, 불편한 진실들도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요, 재료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랑과 믿음으로 사회를 보고 이웃을 볼 수 있다면, 철에 맞지 않게 피어난 개나리꽃을 무시하거나 조롱하거나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소중하게 여기며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탄광이나 잠수함 안에서 산소가 부족해지면 먼저 괴로워하고 때로는 죽음으로써 위험을 알리는 카나리아와 같이 이 사회 안에서 먼저 힘들어하고 비명을 지르며 관심과 배려를 구하는 이들을 나약한 이들, 낙오자들, 패배자들, 선량한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들로 생각하며 냉담하게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실상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아무리 겨울이 추워도 봄은 올 것이고 새 정부도 출범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메리놀 담장의 개나리꽃은 피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봄소식과 더불어 얼어붙은 우리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관용과 배려의 소식들도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이들에 대한 우리 모두의 관심 속에 들려오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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