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개봉해 우리 사회를 한바탕 뒤흔들어놓았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을 본 후 지금껏 뇌리 한 구석에 남아 있는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굶주리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무려 19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있어야 했던 주인공 장 발장은 영화 제목처럼 ‘불쌍한(비참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장 발장과 겹쳐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장 발장처럼 가벼운 실수나 죄 때문에 벌금형을 받았지만 벌금을 못내 도망자 신세가 된 ‘벌금 미납 지명수배자’가 그들이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800여 명, 월 평균 2만45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매년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지명수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서 노역으로 대신하도록 하는 ‘환형유치’에 처해지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매년 3000명이 넘는 ‘한국형 장 발장’이 생겨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한국형 장 발장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벌금 미납에 따른 환형유치로 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차가운 주검으로 되돌아 나온 이들이 생겨나면서부터다. 누가 봐도 목숨을 담보할 만한 큰 죄를 지은 게 아님에도 생명까지 내놓아야 했던 현실이 장 발장의 그것마냥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굳이 검찰 관계자들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환형유치자’들은 벌금을 낼 힘이 없어 감옥에 갇히는 선택밖에는 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레미제라블’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장 발장에게는 그를 정화시켜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끌어준 미리엘 주교가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손 벌릴 힘도 없는 누군가가 아파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일 수 있다.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도 결국은 이런 이들에게 다가가셨기 때문이 아닌가. 눈을 돌려 우리 시대의 ‘레미제라블’을 돌아볼 수 있는 사순시기가 되었으면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