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바티칸을 드나드는 추기경들은 웬만한 할리우드 스타들보다도 더 매스컴의 조명을 받는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언론인들은 새빨갛고 동그란 모자를 쓰고, 수단을 휘날리며 성 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 인근을 오가는 추기경들을 붙잡고 세속적인 관심과 종교적인 신심을 뒤섞어가면서 새 교황이 누가 될 것인지, 어떤 성향의 추기경들에게 세간의 눈이 쏠리는지를 묻는다.
얼마 전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 우리는 여당과 야당의 대선 후보들을 둘러싼 온갖 논란과 주의 주장들을 내세우며 상대 후보를 깍아 내리거나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유리한 발언들을 하면서 대통령 선거에 흔히 동원되는 경마식 보도를 즐긴 기억을 갖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교황 후보 추기경들에 대한 이런 식의 관심은 그리 많아보이지는 않지만 서구 사회, 특히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의 교황 후보에 대한 관심은 우리식의 경마식 보도에 버금가는 흥미로운 드라마처럼 보인다.
한국 사회, 특히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신자들은 교황 선출의 과정에 대해서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있다. 콘클라베라는 비밀스러운 투표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신성하고 경건하게 이뤄질 것이며, 결코 세속적 관심과 인간적 욕심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는 그런 경건한 예식처럼 치러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교황 후보에 대한 추측이나 예상, 전망 같은 논의가 사실상 교회 안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다만, 모든 일들을 하느님께 맡긴다는 돈독한 신심에 기댈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한 편으로는 좀 더 이런 식의, 즉, 서구 언론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다양한 추측과 전망, 바티칸에 대한 근거 없는 혹은 다소간의 근거도 있는 그런 보도들에 대해서 면역성을 키울 필요도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교황 선출 역시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인데, 거기에 어찌 인간적인 면이 온전하게 배제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런 식의 사고방식을 독실하다고 여긴다기보다는 맹목적이거나 조금은 태만한 자세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어느 한 추기경은 콘클라베에 참석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한 기자의 말에, 조금은 농담조로, 콘클라베 안에서 자신이 한 일은 그저 무지하게 지루한 일의 반복이었다고 말했다. 기도하고 투표하고 또 기도하고 기다리다가 투표하고… 어떤 신비스러운 경험이라기보다는 끈기와 인내, 교회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끈질긴 인내를 발휘하는 일이 어쩌면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들이 하는 일 일지도 모르겠다.
이 무지한 지루함 속에서 추기경들은 각자 자기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교회는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 또는 어디를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가, 이런저런 교회의 과제들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이 세상과 교회는 지금 어떤 지경인가, 그 속에서 교황은 어떤 성격과 품성, 신앙심과 성향을 지녀야 하는가 등등 교황을 선출하는데 요구되는 많은 것들을 복잡하게 고려할 것이다.
추기경들은 각자 나름의 노선과 유망한 후보에 대한 견해를 갖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세속에서는 후보들에 대해서 대놓고 지지를 표명하거나, 반대 의사를 공포하지만, 추기경들은 대부분 마음 속에 품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요즘 교황청에서는 종종 선정적 관심을 불러오는 몇 가지 추문들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사람들의 관심은 그러한 세속적 흥미꺼리들을 중심으로 교황 선출의 과정에 눈길을 주고 있기도 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잡음과 근거 없는 혹은 조금은 근거가 있을 법도 한 보도들에 우리는 면역성을 키워야 한다. 애당초 하느님은 모든 인간사를 일일이 개입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맡겨둔 채 당신의 섭리를 펴실 줄 아시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을 확신하기에 우리는 어떤 세속적 관심도 뛰어 넘는, 성령의 개입이 새 교황 선출의 과정에 은근하고 심오하게 이뤄질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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