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른 생명체와 다른 점은 매우 많다. 끊임없이 저 자신을 고쳐 나가는 존재라는 점도 그 중의 하나이다. 지속적으로 저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아닌 어떤 생명체가 쉬지 않고 저 자신을 돌아보며 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겠는가. 오직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런 점만을 생각하면 사람의 미래는 매우 밝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끊임없이 저 자신을 고쳐 나가다 보면 마침내 모든 사람이 좀 더 완전해지고 완벽해질 것 아닌가. 이런 생각에서 나는 힘이 닿는 대로 사람들이 저 자신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 나가도록 이런저런 애를 써왔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이 나라의 역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 것이 사실이다. 오랜 시련 끝에 지금은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내 손으로 뽑을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것만도 대단한 역사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이곳의 현실을 돌아보면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사람은 왜 이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계속하는 것일까. 두 눈 가득 독기를 감추고 있는 저 대통령이라니! 끊임없이 저 자신을 고쳐 나가는 존재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도 한심하고 우매한 것이 또 사람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가 과거형의 인간이 아니라 미래형의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에 기대어 사는 것이 내가 아니라 미래에 기대어 사는 것이 나라는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는 내가 사람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절대로 포기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 된다. 미래의 삶이 지금의 삶보다는 훨씬 나아져야 한다는 믿음을 내가 아직은 잃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인간의 역사가 일렬횡대로 한꺼번에 변하거나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에서 한때 나는 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산언덕 저만치 개나리꽃 한꺼번에 피어오른다 저절로 일렬횡대로 온통 세상 노랗다
저기 저 개나리꽃의 역사 보기 좋구나
……사람의 역사도 저렇게, 저절로 한꺼번에 피어오를 수 있을까 일렬횡대로 노오랗게 온통……
―「개나리꽃」 전문
봄이 되면 남쪽에서부터 샛노란 개나리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가을의 단풍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한꺼번에 붉게 물들어 오르지만 봄의 개나리꽃은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한꺼번에 샛노랗게 물들어 오른다. 자연은 이처럼 일렬횡대로 한꺼번에 변하고 바뀌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의 삶, 사람의 의식은 늘 앞서 가는 면이 있고 뒤떨어져 가는 면이 있다. 내가 아래와 같은 시를 쓴 것도 실제로는 이런 연유에서이다.
모처럼 햇볕 좋은 날, 아파트 광장 한구석, 쪼그리고 앉아, 화단의 흙더미 바라본다 개미들이 일렬종대로, 먹이를 물고 기어간다 지루하게 일렬종대로, 한 가닥 서러움으로
문득 깨닫는 것 있다 사람의 역사도 저렇게, 나의 역사도 오늘 저렇게,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 먹이를 물고, 지루하게 일렬종대로, 한 가닥 서러움으로.
― 「개미」 전문
이 시는 자연의 역사부터 “문득 깨닫는” “사람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다. “먹이를 물고, 지루하게 일렬종대로, 한 가닥 서러움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이 사람의 역사이고 나의 역사라는 깨달음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역사는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삶의 현실 일반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먹이를 물고, 지루하게 일렬종대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이 사람의 역사이고 나의 역사이니 조급할 일이 뭐 있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노 스승의 말처럼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니 무위자연(無爲自然)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오늘의 역사적 현실을 떠올리면 문득 ‘답답한 역사’라든지 ‘한심한 인간’이라는 말부터 떠오르니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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