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교황의 충격적 사임, 세간에 만연한 온갖 억측과 추측과 폭로, 이상하게도 마치 변명하듯 사임의 배경을 설명해야 하는 조금은 구차스러운 교회의 모습, 이어진 교황 선출의 드라마, 물망에 오르는 추기경들의 면면이 신문과 인터넷에 오르내리고, 예상과는 달리 신속했던 새 교황의 탄생.
이 모든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새 교황의 달라진 ‘스타일’과 서민적인 면모,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면서 경직된 관례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제스처,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에 대한 확신으로써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듯하다.
필자는 새 교황이 강복을 주기 전에 먼저 자신을 위한 기도를 청하며 머리를 조아릴 때 울컥했다. 세상 안에서,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항상 머리를 숙일 뿐, 우리 앞에서 머리를 숙여주는 사람을 본지가 너무 오래 된 탓일까? 약 15초간 그가 머리를 숙인 채 우리들의 기도를 들을 때, 하마터면 말을 건넬 뻔했다.
새 교황의 이름이 ‘프란치스코’라는 건 감동이다. 언뜻 생각해도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이름이 연상시키는 삶의 지향, 방법, 가치관들이기 때문이다. 교회를 강력하게 개혁하고 쇄신하되, 그것을 구조적이고 제도적으로보다는 삶의 근본적인 방식과 태도의 변화로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개혁은 그저 단순하고 소박한 신앙의 실천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결코 거대하지 않은 그 소박한 개혁의 기치는 이후 전개된 긴 호흡의 교회 쇄신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로써 중세교회의 권력과 부귀와 사치의 병폐를 넘어설 원대한 개혁이 바로 그 소박함으로부터 시작됐다.
오늘 교회가 근본적인 삶과 신앙의 쇄신을 요청받고 있지 않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미 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비판과 지적들이 교회 안팎에서 밀려들고 있다. 이른바 세간의 억측이고 반교회적인 비방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가톨릭교회가 보여주는 비복음적인 모습들은 명백하다.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는 극단적으로 드러난 한 가지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삶의 태도의 변화가 근원적인 해법이라고 해도, 새 교황으로 시작될 쇄신의 실마리는 아마도 교회의 심장부에서부터 직접적으로 풀려나올 것으로 보인다.
영국 런던대학교 신학부 티나 베티 교수는 “새 교황이 직면한 모든 도전들을 열거할 필요도 없다”며 “이미 우리는 그가 파괴되고 황폐화된 교회를 물려받았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산타 클라라대학교 교회사학자인 게리 메이시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판단해볼 때, 추기경들은 ‘현상 유지’에서 탈피하기를 원했다”며 “그들은 교황청과 관련되지만 내부자가 아닌 예수회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새 교황의 행보에서 교황청의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기미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새 교황이 나오면, 활동이 중지된 교황청 각 부서장들에 대한 신속한 재확인이 이뤄지는데, 아직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곧 교황청 주요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교황청의 대폭 인사는 단지 사람이 바뀜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교황청의 기풍과 정책의 변화, 시대적 요청에 대한 사목적 응답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새 교황이 앞으로 보편교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지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그분의 이름 ‘프란치스코’가 의미하는 것들이 되리라고 믿는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변화의 요청들은 먼 곳 교황청에서만 아니라 지금 한국 교회 안에도 꽤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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