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궁금해서 저녁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위기라고 했습니다. 경제상황이 위기이고 안보상황도 위기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2000년 전에도 세상은 위기라고들 말했습니다. 위기가 정말 오래도 지속되어 가는구나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런 세상에서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연애시절 이야기나 해보렵니다. 어깨를 덮어 내린 긴 생머리를 하고 다니던 아가씨였던 제 아내를 만났을 때 그 긴 생머리가 너무 보기 좋아서 옆모습의 사진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지냈습니다. 천연기념물처럼 예쁘고 고왔던 아내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머리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긴 머리가 보기 좋았다고 한 마디 했다가 아이들 키우면서 머리에다 어떻게 신경 쓸 수 있느냐며 세상모르는 철딱서니 취급을 하더니, 아예 빠글빠글 파마를 하고 왔었습니다. 제 딴에는 양보를 한답시고 내어 놓은 제안으로 긴 단발 생머리를 주문했지만 숱이 적은 아내의 머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또 핀잔을 주었습니다.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 살아온 부모님 시대의 어머니가 생각났고 아내만큼은 자기 머리 모습만큼이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여러 차례 이런저런 시도를 할 때 마다 나쁘지는 않다고 평가해 주었습니다.
어렸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고 이제는 머리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나 봅니다. 몇 년이 지난 며칠 전 미용실을 다녀오면서 모처럼 마음에 드는 모습을 찾아냈다고 기뻐했습니다.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저는 속으로 쾌저를 불렀습니다. 오래 전 부터 부탁해오던 긴 단말 생머리였습니다. 이제는 파마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며 기뻐했습니다.
아내의 찰랑 거리는 머리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왜 세상을 위기라고 말하며 불안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보니 정말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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