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 TV에서 영화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본 기억이 난다. 등장인물도 몇 명 없고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 신부 ‘나’의 고뇌와 묵상을 담은 독백이 내용의 주를 이루는 작품이다. 자못 몰입해서 봤던 것 같다. 흑백영화였다.
영화는 ‘프랑스 가톨릭 작가’로 통하는 조르즈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가 쓴 같은 제목의 1936년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거실 책꽂이에 읽지 않고 꽂혀만 있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민음사, 2009년)가 손에 잡혔다. 고등학교 때 봤던 영화의 감흥이 동기가 돼 원작을 읽기로 했다.
원작을 읽는 동안 영화의 장면이 되살아나는 순간은 몇 번 없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의 간격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전혀 예기치 못한 대목의 등장에 원작을 읽은 보람을 찾았다.
‘나’가 존경하는 토르시의 본당신부가 말한다. “교황 레오 13세의 저 유명한 회칙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을 지금 자네들은 무슨 담화문이나 읽듯 건성으로 읽지. 그 당시에는, 이보게 젊은 친구, 우리는 발 밑에서 온 땅이 뒤흔들리는 줄 알았다네. 얼마나 열광하고 고무되었던지!” 레룸 노바룸은 1891년 발표된 가톨릭교회 최초의 사회회칙이자 노동헌장으로 ‘새로운 사태’라고 번역된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토르시의 본당신부가 새로운 사태를 본당 신자들에게 설명하자 냉담한 반응과 ‘오해’만을 샀다는 내용이었다. 1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교회 내에서 ‘노동’에 대해 말하기는 편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새 교황 프란치스코는 즉위식을 보러 로마에 오려는 고향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로마에 올 비행기 운임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라”고 말했고 청빈을 줄곧 역설하고 있다. 가난한 이에 대한 섬김과 청빈은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라고들 하지만 많은 이들은 한국교회가 ‘중산층화’ 되면서 가난한 이들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새 교황의 탄생이 ‘21세기 새로운 사태’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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