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 한동안 뜸했던 종영 드라마 다시 보기에 다시 빠졌다. 웬만한 드라마들, 줄거리가 뻔해서 첫 회만 봐도 마지막 회를 짐작하고도 남지만,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 보게 된다. 바로 어제 주일에도 전날 밤샘 낚시를 갔다 온 후유증에 비몽사몽간에도 몇 회분을 챙겨서 즐겼다.
좀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과거에 여동생 남편을 실수로 죽게 만든 오빠가 곡절 끝에 결국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자수를 결심하고 동생에게 고백을 하려 앞에 섰다. 이미 모든 것을 짐작하고 가슴에 칼을 품고 있던 여동생은 오빠에게 절규를 한다. “네가 먼저 말하지 마!”
누가 남편을 죽인지도 모르고, 범인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집념 속에서 한을 품고 살아 온 20년, 범인이 자기 죄를 고백하고 만다면, 그 긴 세월이 얼마나 허망해질까. 진작 말했다면 용서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을, 아니면 마지막까지 자기 죄를 숨겨 용서의 명분조차 갖지 못해야 했다. 범한 죄의 무게를, 자기 죄를 고백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덜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여동생은 “네가 먼저 말하지 말라”고 절규했다. 흔한 스토리지만, 사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워낙 흔한 일, 60억 인구가 겪는 온갖 일들 중에 흔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통속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실제니까 통속이겠지.
‘먼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용서의 전제 역시 책임을 추궁 당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잘못을 드러내 고백하고 책임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자발적인 의사이다. 숨기고 피하다가 잘못이 남에 의해 들춰진다면, 용서의 가능성은 줄고 관용의 호소가 받아들여질 여지는 적다.
고해성사도 마찬가지. 고해성사를 통해서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없다. 진심으로 뉘우치는 죄인이라면, 아무리 고백의 때가 늦고 죄의 무게가 무겁다 해도 하느님의 용서는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죄의 고백은 자발적이어야 하고, 징계를 당하기 전이어야 한다.
비슷한 경험을 대부분의 유년기에 했을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고민하다가, 뒈지게 맞을 각오를 하고 부모님께 고백한 뒤, 예상과는 달리 따뜻한 손길과 애잔한 미소로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품어주시는 모습에 한도 없이 울던 그런 기억. 부모님은 예의 여동생처럼 “먼저 말하지 말라”는 대신에 안쓰러워하면서 내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리신다. 이미 다 아시면서도.
최근 가톨릭신문의 한 설문조사는 교회가 쇄신해야 한다는 요청을 명백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쇄신의 요청은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교회의 핵심으로 향했다. 실로 보편교회의 지도층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교황청과 일부 성직자들은, 쉽게 부인하거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잘못을 무척 오랫동안 범하고 덮어왔다.
이른바 ‘바티리크스’는, 자세하고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교황청의 잘못된 관행들에 대해서 내부적인 정화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빚어진 폭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서구교회에서 주로 빚어진,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은 역사가 오래다. 잘못을 덮고 가려던 안이한 대응은 죄악의 무게를 더 키웠고, 지속적이게 만들었다. 많은 잘못들이 적발된 후, 이제 일부 교구에서는 그 책임을 지기 위해서 교구 관할 성당들을 팔아서 벌금을 내는 웃을 수도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
이제 우리는 먼저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추궁 당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잘못을 성찰하고 인정해서 드러내 고백해야 한다. 개인적 삶과 신앙에 있어서든, 혹은 공동체적 삶에 있어서든 고백과 화해는 쇄신의 전제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겨냥하는 교회 쇄신과 개혁의 화두가 과연 한국교회에는 적용되지 않을까? 이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해봄직도 하지 않을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