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이었던 나이에 엉겁결에 가입했던 보험이 계약만기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가슴속에서 울려오는 덜컹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렸던 세월을 마감하고 60대라는 변화된 새로운 시기를 살아내야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아침 일찍 외출하면서 무척이나 큰 어려움 중에 있는 어떤 부인과 함께 하루를 지낼 것이고 저녁 늦게 귀가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밤에 목감기로 인한 기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스스로 알아서 지내라고 부탁했습니다. 병원에서 주사도 맞았고, 먹은 약 때문인지 완전히 소금에 절인 배추가 되어 웬 종일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정신을 차려서 저녁을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보니 다 큰 아이들이 하루 종일 챙겨 먹고 난 빈 그릇들이 개수대 위에 수북이 쌓여있었습니다.
침대 위에 침구가 정돈되어있지 않거나, 개수대에 설거지가 쌓여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내를 위해 귀가 전에 설거지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수대 위에 설거지들은 ‘사랑’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식탁 위에서는 약 봉지가 ‘휴식’을 외치고 있었고 어렵지 않게 약 봉지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피곤에 지쳐서 일어나지 못하는 아내가 잠을 깰세라 조심, 조심 걸어 나온 거실에 앉아서 부엌에 쌓인 설거지를 바라보며 아내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며 아내를 탓하던 남편이 설거지를 해주지 못해서 마음을 아파하고 있다니….
그것은 주님의 개입이었습니다. 한창 나이엔 오르막길을 오르며 이뤄놓은 결실에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기뻐했지만, 이제는 내리막길을 걸으며 사람 대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식탁위에 놓인 약봉지를 째려보며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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