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으로 가득찬 ‘이 시대’
욕망이 난무하는 것이 오늘의 이 시대다. 오늘의 이 시대라는 것은 자본주의 시대를 말한다. 오늘의 이 자본주의 시대에는 거개의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불쑥불쑥 자신의 욕망을 들이대고 있다. 그렇다. 지금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못 하는 짓이 없다. 사기와 허위가 일상적으로 횡행하는 것이 지금의 이 시대이다.
사기와 허위는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에도, 곧 선거가 상례(常例)로 된 뒤에도 별로 줄어들지 않은 듯싶다. 민주화가 되면, 선거로 공동체의 대표를 뽑게 되면 사기와 허위가 좀 줄어들 줄 알았는데…. 국회의원 선거이든 대통령 선거이든 선거직에 나서는 사람들이 지키지 못할 사기와 허위의 공약들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기와 허위의 공약들을 남발하는 것은 시장 선거이나 도지사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선거용 공약(空約)이었다고, 그 공약을 믿었냐고 이실직고하는 당선자들도 있다. 대통령이 되고 싶고, 시장이 되고 싶고,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데, 거짓말을 좀 한 것이 무슨 큰 죄냐는 것이다.
‘747’ 대선 공약
과거의 대통령은 점보여객기의 이름을 빌린 747이라는 멋진 선거공약을 내세워 어리석은 국민들의 표를 갈취한 적이 있다. 747이 연평균 경제성장 7%, 일인당 소득은 4만 불, 세계 7대 강국을 이루겠다는 대통령 선거공약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의 대통령도 지난 12월의 대선에서 지키지 못할 선거공약을 핑핑 내뱉으며 거짓말의 바벨탑을 쌓은 적이 있다. 국민들의 70%를 중산층으로 만들겠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대탕평를 이루겠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통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것 등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이들 공약에 들어 있는 대통령 후보의 절박한 마음이야 왜 모르겠는가. 물론 이때의 절박한 마음은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가리킨다. 혹자는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망에 쫓겨 거짓말을 좀 한 것인데 뭐 어떠냐고 할 수도 있다. 세상이 온통 거짓말쟁이와 사기꾼들로 가득 차 있는데 대통령 후보 혼자만 정직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때로는 이런 주장이 그럴싸하게 들릴 수 있다. 대통령이 별 것인가. 국회의원이 별 것인가. 선거직도 일종의 직업이거니와, 이때의 직업은 더구나 비정규직이지 않은가. 평생 고용이 되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임기 동안 잠깐 복무하는 것인데…. 비정규직인 주제에 특별히 역사와 사회에 책임감이나 의무감을 가질 필요가 있겠는가. 혹시라도 이렇게 생각하는 공직자가 있다면 큰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군수 등이 있다면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선거직 당선자’ 국민에게 모범되길
어찌 보면 욕망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선거직의 당선자들에게, 사기와 허위의 공약을 남발해온 이 사람들에게 정직하고, 투명하고, 순수하고, 진실한 가치를 실현하라고 하는 요구는 과도한 주문인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선거직에 당선된 이들이 역사와 사회의 모범이나 기준이 되기는 근본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요임금이나 순임금처럼 국민들의 모범이 되어 추대를 받은 것도 아닌 것이 이들이 아닌가.
혹자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등 선거직의 당선자들을 책임이 없는 비정규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민족 공동체의 지도자로 뽑힌 것인 만큼 이들의 직책을 직업의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들이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지도자라고 하면, 적어도 이들 자신이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들이 자기 자신을 공동체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면 언제나 국민들의 모범이 되고 기준이 되려고 애를 쓸 것 아닌가. 하지만 역대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장이나 도지사 등을 보면 임명직 시대이든 선거직 시대이든 모범이나 기준을 보여준 예는 별로 많지 않은 듯싶다.
이들이 모범이 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힘(권력)이나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자리가 본래 힘이나 돈과 무관한 자리가 아니니 만큼 이들이 힘이나 돈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들이 순수의 힘만으로 이들 선거직에 당선이 되었다면, 다시 말해 정직하고, 투명하고, 무구하고, 진실한 가치만으로 이들 선거직에 구했다면 힘(권력)이나 돈으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울 수도 있으리라.
정직하고, 투명하고, 무구하고, 진실한 가치의 실현은 사람 사이의 신뢰를 전제로 자유, 평등, 사랑의 가치를 추구할 때나 가능하다. 순수의 힘을 토대로 이들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자본주의적 근대가 시작된 이래 모든 인간이 동의한 보편적 가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은봉씨는 《삶의 문학》 제5집(1983)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를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 등단했으며, 《창작과비평》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1984) 에 「좋은 세상」외 6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한성기 문학상, 유심 작품상, 가톨릭 문학상 등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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