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내 인생에 중요한 성인이 여럿 있다. 굳이 그중 두 명만을 꼽으라면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와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이라 하겠다. ‘가난한 자의 슬기’를 살아간 프란치스코와 예수회의 창설자로 교회의 지평을 넓힌 이냐시오!
그들 가운데 나는 먼저 프란치시코 성인에게 반했었다. 대학 2학년 때 영화 <태양의 아들과 딸>을 보고 그분께 매료돼, 당시 한국에 출판되어 있던 그분에 관한 전기를 모두 읽었다.
특히 「잔꽃송이」는 몇 번이나 읽었다. 성인이 살았던 시대는 교황권이 절정이던 시기며 교회의 부패상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여기 저기 일어나던 때였다. 그러나 그분은 개혁이니, 쇄신이니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분은 단지 그리스도께 매료됐고, 그렇기에 교회에 충실하며 소박하게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그런 소박함이 오히려 교회에 아래로부터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었다. 「잔꽃송이」에 있는 ‘참된 기쁨’에 관한 이야기는 이 역설을 잘 드러내준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
프란치스코 성인과 만난 몇 년 후 나는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 프란치스코가 낭만적이고 꿈을 불어 넣는 인물이었다면, 자서전을 통해 만난 이냐시오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긴 여정을 거쳐(성인은 자신을 순례자라고 부른다), 파리에서 동료들을 모으며 예수회로 발전하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성인에 대해 제대로 감탄하게 된 것은 예수회에 입회하고 수련원에서 ‘영신수련’ 한 달 피정을 하고 나서였다. 일반인이 하느님과 통교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수련을 마련한 ‘천재성’과 ‘섭리’에 대한 감탄!
두 성인의 공통점
시공간의 차이만큼 두 분의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공통점도 많다. 무엇보다 첫째, 두 분은 신비가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오상을 받으며 주님과의 일치를 드러냈다. 이냐시오성인은 까르도네 강변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되는 신비체험을 하고 그 체험을 풀어내는 삶을 산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야말로 두 분 삶의 원동력이고 목표였다.
둘째, 두 분은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사람임을 알고 살아갔다. 이는 그리스도의 빛과 사랑을 아는 이의 당연한 귀결이겠다. 자신의 욕심과 약함을 아는 이는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남을 단죄하기보다 연민을 가진다.
셋째, 두 분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충실함으로써 교회를 개혁하는 결과를 낳았다. 두 분 모두 쇄신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를 살아갔는데, 이들은 개혁을 부르짖지도 않았고 계획하지 않았다. 단지 그리스도의 신비를 체험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그들 지평과 노력의 전부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파장은 엄청났다.
프란치스코와 비슷한 시기에 일었던 발두파 같은 움직임이 교회의 철저한 개혁을 부르짖다 교회를 벗어났다. 이냐시오가 살던 시기는 ‘종교개혁’의 움직임이 전 유럽을 뒤흔들던 시기이다.
교회의 부패에 항거(protest)하는 루터는 교회에서 갈라지는 길을 갔다. 두 분 역시 교계의 의심과 반대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교회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감동한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졌고, 이 물결이 교회를 씻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두 분 모두 가난을 사랑했고, 가난한 이의 벗이었다.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귀부인이라 불렀고, 이냐시오는 가난을 어머니처럼 사랑했다. 프란치스코의 가난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냐시오도 그러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병자를 방문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다. 심지어 트리엔트공의회에 신학자문위원으로 참석하는 두 동료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지침을 주었을 정도이다. 가난한 이의 벗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에 나오는 자연스런 결과이다.
교황 프란치스코
새 교황님이 아르헨티나라는 변방 국가에서 선출됐다. 게다가 예수회 출신이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하셨다. 브라질 출신 어느 추기경님이 축하하며 했던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라는 인사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분명 이 이름에는 당신의 사목방향과 정신이 담겼을 것이다.
부디 새 교황님께서 프란치스코와 이냐시오의 후예로서 교회에 새 기운을 불러 일으켜 주기를! 하여 주교와 사제들과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불 타 가난한 이의 벗이 될 수 있게 되기를!
김우선 신부는 예수회 소속으로 현재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예수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 사회사목 코디네이터로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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