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 2000여 명과 100여 개 본당·기관·단체 참여 등. 지난 2005년부터 3년간 진행된 가톨릭독서운동 ‘신심서적 33권 읽기’는 교회 내 독서 열풍 그 자체였다. 저조한 독서율을 보이는 한국교회 안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책 읽는 교회의 가능성을 보여준 독서운동은 열풍을 타고 민들레 씨앗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2013년 현재, 예전의 뜨거웠던 열기는 사라졌지만 가톨릭 독서문화는 작은 꽃을 피웠다.
■ 민들레 홀씨 하나, 가톨릭독서운동 ‘신심서적 33권 읽기’
가톨릭독서운동 ‘신심서적 33권 읽기’는 서울 잠실7동본당의 ‘신심서적 54권 읽기’(2004년)의 성공을 계기로 추진됐다. 전국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독서운동은 한국교회는 물론 해외교회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캠페인을 시작할 당시 걱정과 우려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독서에 대한 신자들의 잠재된 열망을 일깨워 준 독서운동이 본격화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지가 처음 시작된 2004년 12월부터 불과 수개월 만에 1000여 명의 신자가 독서운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국내를 넘어 해외교포교회에서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필리핀 마닐라, 홍콩, 미국 올드 볼티모어 등 3개 공동체가 동참했다.
교황청에서도 독서운동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교황청 관보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지는 2005년 2월 23일자에 ‘신심서적 33권 읽기’의 단계별 목표와 현황, 기대 등을 한 면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했다. 또한 당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차관이었던 로베르 사라 추기경(현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의장)이 격려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다양한 부대행사도 함께 진행됐다. 출판문화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독서운동 열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와 함께 ‘한국교회 출판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워크숍을 열었다. 또한 2005년 7월 가톨릭독서운동 ‘신심서적 33권 읽기’ 상반기 결산 대담회를 갖는 한편 2006년에는 전국 규모의 독후감 공모대회도 열어 독서 열풍을 이어갔다.
■ 교회 내 독서문화 새싹들
가톨릭독서운동 ‘신심서적 33권 읽기’는 2007년 3년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열기가 뜨거웠음에도 불구하고 후속 캠페인이 진행되지 않아 항간에서는 “몇 년 동안의 이벤트로 그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민들레 홀씨가 퍼져 만든 변화는 땅 속에서부터 시작됐다.
대대적인 규모의 독서운동은 없었던 대신 전국 본당이 스스로 움직였다. 신심서적 33권 읽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본당은 다채로운 활동을 자체적으로 기획, 진행했다.
독서운동에 참여했던 부산교구 울산 방어진본당은 매월 독서모임을 갖고 독후감 공모전을 진행했으며, 광주 월곡동본당은 분기별로 독후감 나눔 모임을 마련해 독서에 대한 신자들의 열의에 부응했다.
더불어 출판계의 인문학 열풍과 작은 도서관 만들기 운동이 교회의 독서운동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신심서적 33권 읽기를 통해 독서의 참된 맛을 본 교회 안에서는 문화사목의 일환으로 성당 내 북카페나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본당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일반서적은 물론 자주 읽지 못하는 가톨릭 양서 등 다양한 도서를 소개하고, 제공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또한 주보를 통해 가톨릭 양서를 소개하는 본당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책을 매개로 하는 사목을 활발하게 펼치는 사목자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매달 영적독서 모임을 갖고 있는 수원 영통성령본당 김종남 주임신부는 직접 강사로 나서 선정 도서에 대한 강의 시간을 마련하고 있으며, 의정부 정발산본당 최대환 주임신부는 신자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 본당에서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 반포4동본당 박동균 주임신부는 “디지털시대라고 해도 종이책이 갖는 메리트가 있어 도서관이나 독서모임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이 높다”면서 “책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은 물론 예비신자나 냉담교우들을 하느님과 교회 안으로 이끄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서문화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다시금 독서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2009년 하반기 문화의 복음화 포럼 주제로 ‘독서사목’으로 정하면서, 이러한 분위기에 응답했다. 매스컴위원회는 본지와 공동으로 기획 ‘책 읽는 교회, 성숙한 신앙’을 추진하며 다시금 교회 내 독서문화 부흥에 불을 지폈다.
평신도가 자발적으로 형성한 독서모임도 생겨났으며, 지난해에는 매스미디어에 종사하는 가톨릭 신자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회장 김정동, 지도 김민수 신부)가 창립돼 매달 독서콘서트를 열고 있다.
가톨릭독서운동 ‘신심서적 33권 읽기’라는 민들레 홀씨 하나로 시작된 교회 내 독서문화는 본당과 평신도의 움직임으로 새싹을 틔우고, 현재 작은 꽃을 피웠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는 “가톨릭독서운동은 책을 매개로 한 모임과 신앙생활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면서 “앞으로는 실질적인 사목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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