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원래 차분하다.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화가 나도 잘 참고,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이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감각적이기보다는 명상적이고, 사물의 겉모습 뒤에 감춰진 본질과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경박한 말장난보다는 실제로 유효하며 정확하게 초점에 맞춰진, 책임 있는 토론을 좋아한다.
라고, 필자는 착각하고 살아왔다.
차분해 보이는 이유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탐탁치않게 생각하는 게으름 때문이고, 쉽게 동요하지 않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 쉽지 않은 굳어진 머리와 허심탄회한 감정 표현에 익숙치않은 둔감함 탓이다.
감각적이지 않다는 것은 오히려 섬세한 디테일에 약하고, 예민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화가 나도 잘 참는다는 건… 주먹으로든, 말로든 잘 싸우지 못해서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시도를 새로이 할 진취성이 부족한 이유다. 그냥 우직하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랄까?
명상적이라는 것은, 엉덩이가 무거워서 한 자리에 오랫동안 뭉개고 있을 수 있다는 인내심일 뿐이고, 아내의 달라진 머리 스타일도 적시에 파악하지 못하니 사물의 본질과 내면은 커녕 겉모습도 제대로 못본다.
개그 콘서트를 보면서 아무런 감흥을 못 느끼니, ‘경박한’ 말장난의 재미와 재치, 인간미를 누리지 못하는 건조한 성품이다. 초점 있는 책임 있는 토론에 대한 흥미는 다만 내가 관심 있는 주제만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이기적인 대화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살아가면서 곰곰 잘 생각해보면, 세상은 모순과 갈등으로 점철돼 있는 것 같다. 어떤 때에는 과연 화합과 조화가 존재나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위에 산만하게 열거한 것처럼, 24시간 스스로 내려다보고 들여다보는 내 자신의 행색과 내면에 대한 나 자신의 의견조차 때로는 모순된다.
많은 경우 착각이고, 대부분의 경우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남들이 보기에는 다른 모습이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그리도 많은 대화를 나누고 대화만큼이나 잦은 싸움을 해가면서도 과연 얼마나 서로가 서로를, 자신이 자신을 보는 시각과 의견들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
‘고집’은 절대적 이념을 지상의 가치로 삼고, 확고한 신념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그리고 개인의 삶의 한 가지 정형으로 구현하는 것이 명예로 간주됐던 전근대적 사회의 미덕이었다. 다소 퉁명스럽고 투박해도, 고집스러운 삶은 농경사회에서 유용한 삶의 지혜로 통용되던 라이프스타일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다원적인 사회에서, 절대가 혐오되고 상대적 가치가 우위를 점하고 상식으로 통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작금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고집은 자칫 분열과 갈등, 모순을 야기할 위험성을 갖고 있다.
내 자신이 내 자신을 일관성 있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고려해보면, 상대방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교만이고, 그것은 때로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이어진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고방식이 절대적 진리를 설파하는 그리스도교에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보편교회의 인식이지만, 역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고의 어떤 요소들은 편협한 자기 인식을 벗어나 타자에 대한 관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겸손, 다른 이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진의(眞意)를 아전인수로 해석하기보다는 너그럽게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나,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신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여유, 이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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