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희한하고 이상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넓혀 이해하면 더욱 희한하고 이상한 세상을 살고 있는 듯싶어 어리둥절해지고는 한다.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지 하고 멍청해질 때가 적잖은 것이 오늘의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현실이다. 희한하고 이상한 점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북쪽도 남쪽에 못지않아 보인다. 개성공단 문제나 금강산 문제를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밀어붙일 필요가 있을까.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하지만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북쪽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내가 직접 겪고 부딪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길게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희한하고 이상한 세상을 살고 있기로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남쪽이 훨씬 심한지도 모른다.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엉뚱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정작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뭐 이런 세상이 있지, 뭐 이런 세상이 있어, 하고 중얼거릴 때가 많은 것이 이 나라의 오늘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한복판을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이 희한하고 이상한 사회를 지시하는 말은 많다. 사기사회, 위험사회, 피로사회 등도 그중의 하나이다. 물론 피로사회, 위험사회, 사기사회가 따로 떨어져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기사회이기 때문에 위험사회이고 위험사회이기 때문에 피로사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기가 난무하는 위험한 사회를 살면서 피로를 느끼지 않기는 어렵다.
눈을 감으면 코를 베어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얼마전 나는 멀쩡히 눈을 뜨고도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핸드폰 요금이 조금 많이 나온다 싶어 조회를 해보았더니 무려 7개월씩이나 매달 1만6500원 씩 알 수 없는 소액 결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우선은 핸드폰 회사에 전화를 걸어 소액 결제가 불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런 다음 소액 결제를 해간 회사를 추적해 보았지만 돈을 되찾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서울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아내에게 이런 사실을 전화로 얘기했더니 일단 핀잔부터 해댔다. 그런 다음 이것저것을 알아 본 뒤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런 일이 있고 하루 뒤였다. 서울의 아내한테 전화가 왔는데 자신의 핸드폰 요금에서도 매달 1만9800원 씩 4월간이나 알 수 없는 소액 결제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와 내가 안팎에서 동시에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실제로는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알고 보니 이런 사기를 당한 것이 우리 부부만은 아니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아예 소액 결제 사기 피해자 모임까지 결성되어 있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사기사회, 위험사회, 피로사회라고 하더니 그 여파가 내게까지 직접 침투해 있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하루하루가 짜증스럽고 한심하게 생각됐다. 이제는 세계적인 가수가 된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의 가사처럼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baby baby/나는 뭘 좀 아는 놈”들로 가득한 것이 대한민국인지도 모른다.
가짜 강남신사
사기성이 높은 가짜 젠틀맨, 이른바 강남신사를 풍자하고 야유하고 있기는 또 다른 싸이의 세계적인 노래 〈젠틀맨〉도 마찬가지이다. 이 노래는 “알랑가 몰라 왜 화끈해야 하는 건지/알랑가 몰라 왜 말끔해야 하는 건지”로 시작되거니와, 뮤직 비디오를 보면 가짜 강남신사인 사기꾼(싸이 자신)이 나와 온갖 욕정을 드러내며 지랄발광을 떨고 있다. 젠틀맨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짜 강남신사가 나와 싸구려 리듬에 맞춰 잡스러운 춤을 추며 대한민국 사기꾼들의 허접스러운 욕정을 풍자하고 야유하고 있는 것이 이 노래이다.
가짜 강남신사, 곧 사기꾼으로 넘쳐나는 오늘의 이 대한민국을 아름답고 충만한 사회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런 이유에서 사기꾼들이 득시글거리는 지금의 이 대한민국을 사기사회, 위험사회, 피로사회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들 사이에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들 사이에도 사기가 판을 치는 것이 오늘의 세계현실이다. 그러니 남한과 북한이 쓰잘데기 없는 자존심을 두고 터무니없는 거짓과 허위의 행각을 벌리고 있는 것이리라. 대한민국과 일본, 대한민국과 미국의 사이에 상식적이면서도 품격 있는 외교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온통 사기꾼들이 득시글거리는 것이 오늘의 세계현실이니 말이다.
사기를 당하지 않고 온전한 자아를 바르게 지키며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한가. 남의 핸드폰을 이용해 몇 개월씩이나 돈을 갈취해가는 것이 오늘의 이 사회이거늘, 온전한 자아를 바르게 지키며 살 수 있는 길이 따로 있을 리 만무하다. 이제는 나도 거침없이 사기와 협잡의 일에 나서야 하는가. 오늘의 이 엉뚱한 사회가 답답하고 한심할 따름이다.
이은봉씨는 《삶의 문학》 제5집(1983)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를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 등단했으며, 《창작과비평》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1984) 에 「좋은 세상」외 6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한성기 문학상, 유심 작품상, 가톨릭 문학상 등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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