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나 자매 사이의 아끼는 마음을 지칭하는 ‘띠앗머리’, 그리고 이 이름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시행하는 탈북인 멘토링 프로그램 사도직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수도회의 책임자와 실무자뿐 아니라, 자원활동가들이 ‘띠앗머리’의 의미와 같은 마음으로 탈북 청소년·청년들과 동반하며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2011년부터 ‘띠앗’으로 불리는 활동가와, ‘나무’로 불리는 탈북인이 일대일로 매칭이 되어 정서적 지원을 위해 만나는 것은 남한사회에서 탈북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던 적던 상관없이 탈북을 해서 오는 순간부터 갓난아이처럼 새로 태어나는 탈북인들을 만나는 것은 저에게도 함께하는 활동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과는 다르게, 그들과는 이미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서로 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같은 말을 하면서도 많은 오해들이 생기는 것 역시 대부분은 ‘어느 정도’라는 애매함이 일으킵니다. 요즘 많이들 얘기하는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분명히 중요한 만큼, 물론 정서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단순하게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점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점점 이 ‘서로 다름’ 마저도 우리의 생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그동안 한민족·한겨레라는 이름으로 교육받고 자라 온 남한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단순하고 쉽게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다름’이라는 단어로 표현된 것일 수 있습니다.
탈북 이후 수개월의 적응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바로 남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이런 생각을 더 확고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우리는 탈북인을 볼 때에 동등한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우월한 위치에서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으로 규정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애석하게도 탈북인과 함께 살아가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왔듯이 진정한 한민족ㆍ한겨레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내 가족처럼 바라보면 됩니다. 우리가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그 구성원이 부족해서 채워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남’이 아닌, ‘내 가족’으로 탈북인들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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