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과 만난다는 것은 짝사랑을 하는 것이지요.” 부족한 제가 띠앗머리 사도직을 하면서 참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중 한 박사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에는 막연한 긍정을 표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를 차츰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짝사랑의 마음에 스스로를 대입하면서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 파악하게 됩니다.
탈북 청소년·청년들의 멘토로서 활동하는 자원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둘 사이에 기쁘고 즐거운 일들보다는 어려운 고충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의 차이나,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을 겪은 활동가들은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활동 때문에 도리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처를 잘 돌보지 못하면 활동에 부담을 느껴서 사랑을 키우기 보다는 포기하게 되는 상황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 짝사랑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상대는 내게 그다지 관심이 없고 신경 쓰지도 않지만 그래도 짝사랑하는 대상을 위하는 마음으로 관심 갖고, 궁금해 하고, 신경을 쓰는 그런 짝사랑이 우리 문제의 해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갑과 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베풀어야하는 이해관계를 떠나서, 순수한 사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스스로 먼저 낮출 줄 아는 겸손함이 존재합니다.
탈북인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그들의 것을 배우기 위한 모습을 남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참 의미의 짝사랑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쉽게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나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지내기에도 벅찬 세상에서 내 자신의 노력, 그것도 그것이 언제 받아들여질지 모르는 관계를 유지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탈북인에 대한, 그리고 북한 동포에 대한 이 짝사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완벽한 모범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과도 비견될 수 없는 분께서 스스로 겸손하게 세상으로 오신 분,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보다 더 철저한 짝사랑의 삶은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믿고 따르고자 한다면, 지금 우리의 짝사랑이 조금은 덜 힘겹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 전혀 아쉬울 것이 없는데 왜 짝사랑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 역시 자연스럽게 없어집니다.
주님의 짝사랑을 첫사랑으로 받아들인 몇 명의 사람들로부터 지금 그 사랑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하고 있는 짝사랑이 탈북인들에게 첫사랑이 된다면, 우리 둘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사랑을 전하는 이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첫사랑의 기쁨을 위해 짝사랑은 필수입니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