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왜 나는 항상 시간에 쫓길까? 왜 세상은 편리하게 변했는데, 내가 하는 일은 왜 세상이 편리해지고 능률적인 된 꼭 그만큼이라도 줄지 않을까? 단순한 산술로 한다면, 빨라지고 신속해진 만큼 내 일도 줄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도대체 왜 나는 점점 더 바빠질까?
20년 전, 수습기자 시절에 하던 주 업무 중 하나가 PC 통신 서비스에 우리 신문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서 하루종일 타이핑을 하는 것이었다. 활판 인쇄를 하던 때인지라, 디지털로 저장된 파일로서의 기사는 존재할 수 없었기에, PC 통신 ‘하이텔’ 또는 ‘천리안’ 운운 하는 서비스에 신문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타이핑을 해야 했다. 디지털 세상으로의 여행이 바야흐로 시작되던 때였다.
필자는 외신기사를 20년 동안 맡아 해왔다. 처음 외신 번역을 인수 받을 때, 해야 할 일은 일주일에 한 번 바티칸으로부터 오는 이른바 ‘파우치’, 누런 봉투와 그 안에 든 그리 두툼하지 않은 분량의 영문 기사들을 번역해서 기사를 만드는 일에 그쳤다. 일단 그 작업량을 완수하면 특별히 더 자료가 나올 것이 없었기에 다음 파우치가 올 때까지 다른 일을 하면 됐다. 그런데, 지금은? 고정적으로 참조하는 이런 저런 외신 서비스와 관련 사이트들은 한 번 둘러보는데에만 두어 시간이 소요되고, 일주일치 분량을 모으면 가히 책 한 권을 능가한다.
디지털 자료와 온라인 네트워크가 없던 그 때, 기사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했다. 하다못해 신문 뉴스 자료를 참조하려면, 광화문에 몰려 있는 일간지 자료실을 방문하고 먼지 속에서 신문들을 뒤적거려서 복사하고 돈을 지불한 뒤 터덜거리며 걸어오곤 했다.
편집과 취재가 떨어져 있는 탓에, 마감 때면 원고는 팩스로 사진은 고속버스를 태워서 편집부가 있는 곳으로 보내야 했다. 버스가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고, 맹한 수습을 보냈다가 못 찾아오면 뒈지게 욕을 한 다음에 고참이 다시 터미널로 택시 잡아 타야 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빛의 속도로 해결된다. 필요하면 화상을 연결해서 같은 사무실처럼 대화와 얼굴 표정까지 나눈다. 섬세한 감정적인 표현 외에는 도무지 불편할 것이 없을 정도로 업무와 친교가 전산화, 네트워크화, 자동화돼 있어서 일의 효율성 면에서는 과거 그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그것이 불과 채 20년이 안된다.
그런데, 왜? 여태까지 나는 바쁜지? 전에 하던 업무량의 두 세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업무의 편의성과 생산성을 높여줄 수 있는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는데 왜 여전히 나는 시분을 쪼개어 써야 하는지? 시테크라는 용어가 한 때 현대인들의 모범적인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꼽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시테크’가 암시하는 삶의 태도와 자기 관리가 세속적인 성공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다. 필자 역시 제한된 시간으로부터 꼼꼼하게, 최대한의 효율성을 뽑아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상시로 갖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볼 일은 우리가 과연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했으며, 할 수 있는지를 성찰해보는 일이다. 10년, 20년 전에 제작했던 신문, 그리고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 신문이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을까? 물론 더 많은 소식을 담고, 더 다양한 정보들을 전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명동에서 광화문까지, 터덜거리며 걷는 동안 머릿속을 채우고 여물어가던 다양한 생각들보다 온라인으로 업무를 처리한 뒤 남는 시간이 더 가치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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