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 독거노인’ 십 여 년, 외로움이나 무섬증엔 어지간히 굳은살이 박였다. 천지간 비바람에 번쩍 하늘이 쪼개져도, 노란 둥근달 휘영청 밝아 작은 별 아득하게 멀어도 그저 그러려니, 전화통 한번 울지 않고 현관에 사람 신발 없는 몇날 며칠이 흔적 없이 흘러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그러고는 ‘비 오시네, 달도 밝네, 사는 게 그러네’ 혼자 말한다.
사람들은 다 혼잣말을 한다. 복수하고 싶은데 간이 작아서, 매달리고 싶은데 차마 얼굴 못 팔아서, 터진 자존심을 한 땀 한 땀 꿰매면서. 예외도 있지만 아무튼 남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독거노인의 혼잣말은 좀 다르다. 들으라고 한다. 그래서 리얼 하다. ‘야, 너 새 맞아? 목소리가 왜 그래?’ 까악 거리는 까치한테 퉁명스럽게. ‘좋게 말로 할 때 흩어져라이, 나 나가야 게’ 서쪽하늘로 뭉글뭉글 모이는 먹구름한테 명령조로. ‘어이 잘 한다 힘내, 영차영차’ 흙 뚫고 나오는 열무 싹한테 싹싹하고 살갑게.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기름유출사고로 시꺼멓게 기름 뒤집어쓰고 죽은 물고기들한테 눈물을 흘리며.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장례미사에서 성가해야하는데 아직 이불 속에 있는 스스로에게 아주 매섭게. ‘거기 좋아? 나 갈 때 데리러 와’ 10주년 엄마 기일에 엄마한테 가슴 짠하게. ‘자꾸 이러시면 나 길상사 다녀요, 정말이에요’ 집 팔아달라는 기도 삼 년째에 예수님한테 무지무지 협박조로.
우주를 채우는 멋진 혼잣말들. 몇 천 년이 지나도 그 향 그대로인. 음악, 그림, 시. 위대한 영혼들의 혼잣말들이다. 차마 그렇게는 아니더라도 ‘나가 당신 재산잉게요, 관리 쫌 하시쇼, 혼자는 암 것도 못함 시로 자꾸 설치는 것도 관리 허시고요’ 허허롭고 가여운 독거노인의 혼잣말도 예수님의 착한 귀에 가서 닿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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