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대기업 임원의 항공기 여승무원 폭행으로 빚어진 ‘라면 임원’ 사건을 비롯해 호텔 직원에게 폭언을 퍼부은 ‘빵 회장’사건에 이어 우유회사 영업사원의 ‘욕설 푸시’ 사건 등으로 ‘갑을문화(甲乙文化)’라는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
‘갑을(甲乙)’이라는 말은 계약서에서 계약 당사자들을 관습적으로 일컬어온 대명사다. 하지만 ‘갑’은 계약상 유리한 위치에, ‘을’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계약자라는 ‘함의’를 담고 있어, 이것이 강자와 약자를 지칭하는 또 다른 대명사로 자리잡아 왔던 게 현실이다. 하지만 ‘뛰는 갑 위에 나는 갑 있다’는 말처럼 갑과 을의 관계는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고 지내는 것 또한 현실인 것 같다. 어떤 관계에선 내가 갑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상황에선 을로 역전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주로 ‘갑’의 위치가 자신의 주된 자리라는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갑’ 대우를 받을 때는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 행동하다가도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이 ‘을’ 대우를 받으면 마치 ‘나’의 일인 양 분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는 교회 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신자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각종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문제에서 그 원인을 찾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강조한 하느님 백성의 친교의 공동체도 결국은 수평적 의사소통 구조를 바탕으로 한 대등한 인간관계를 밑거름으로 한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6-28)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에게 속하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바오로 사도의 통찰은 그 시대만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혹여 내가 ‘울트라 슈퍼 갑’으로 군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그리스도와 하나 된다는 것은 그분처럼 한없이 낮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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