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요즘, 많은 매체들에서 탈북인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각 프로그램의 성격들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멘트들은 ‘남북이 하나 되는’이나, ‘통일을 기다리며’와 같이 거의 비슷합니다. 하지만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는 그 말들 안에 ‘통일’을 단순히 이벤트로 여기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저는 그렇게 쉽게만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한 법인에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통일이 꼭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것이나, 다른 매체의 조사에서는 “통일이 절대 안 될 것”으로 20대의 다수가 응답한 것은 애석하게도 지금 남한 사회에서 갖고 있는 통일의식의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을 만들게 된 것은 통일을 생활이 아니라, 이벤트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몇몇의 통일에 대한 가정들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벗어나면 통일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교육은 우리의 생각의 폭을 좁혀 놓았습니다.
생활에 있어서 이벤트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생활이 존재하지 않으면 이벤트 역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기 때문에 쉽게 놓치는 것이 바로 생활이고, 통일 역시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이 생활에 속해 있습니다. 생활이 아닌 특별한 행사로서 통일을 기대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나 긴 기다림이 필요할 때에도 쉽게 포기하거나 지치지 않기 위한 우리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통일을 당연한 것으로, 살아가며 준비하는 생활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생활이 무수하게 많은 방식으로 이뤄지듯, 통일에 대한 시각도 전쟁의 결과나 경제적인 흡수 같은 몇 가지의 예시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도 이뤄질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마치 성령강림의 신비가 그 당시에는 엄청난 이벤트로 보였지만, 사실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 신비 안에서 우리가 생활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통일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도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주님의 인사와 선물 그리고 희망으로 생활하고 있 듯, 평화를 본질로 하는 통일의 기쁨도 우리의 희망으로 생활할 때에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이벤트로 통일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따르는 주님의 평화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이들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게 한 성령의 화합과 평화의 정신을 가지고, 우리도 통일을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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