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으로는 한여름이다. 매년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부활을 지나면서는 낚시꾼들의 용트림이 시작된다. 이른바 ‘영등철’을 한없는 인내와 몸부림으로 지내온 낚시꾼들이 ‘필드’로 나선지가 수주 째이다.
‘영등철’이란 하늘에서 ‘바람’을 관장하는 ‘영등 할머니’가 음력 2월 1일부터 한달간 육지로 내려오는 시기이다. ‘바람’을 관장하기에 한 달간 매서운 바람이 불며, 바다의 수온이 최하로 떨어진다. 그래서 바다 낚시꾼들은 전혀 고기가 나오지 않는 이 한 달여의 시기를무진장의 인내로 지낸다.
그런데, 날이 풀리고 조바심을 치며 나선 바다 꾼들이 조급함에 실족을 하거나 미끄러져 사고가 나는 사례가 많다. 험한 갯바위나 테트라포드(tetrapod, 방파제 등에 쓰이는 4개의 뿔을 가진 콘크리트 블록)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일이 곧잘 있다.
하루는 충남 서해안에서 밤낚시를 하는데 하도 어둠이 짙어 겁이 났다. 웅얼웅얼하는 소리가 들려 혹시나 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10미터쯤 떨어진 앞쪽에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콧노래를 하는 낚시꾼이 보였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싶어 말 건네기를 삼갔는데, 소주라도 한 잔 할까 다시 눈길을 주니 보이질 않는다.
여전히 어둠은 깊고 테트라포드 사이가 워낙 구멍이 커 쉽사리 다가가기도 어려운 지경이었고, 게다가 왠지 속도 메스껍고 뒷골도 땡겨서 그냥 서둘러 자리를 나왔다. 다음날 인근 낚시방에 들러 물어보니, 매년 그 즈음에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한다.
가능성은 혹시 두 가지? 하나는 테트라포드가 크고 험해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잦은 지역이니, 분명 그 사이에 빠져서 죽은 이들도 있을 것. 세간에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은 그 영들이 어둠이 짙은 밤이면 나타나서 자기들이 세상을 하직한 곳에 앉아있는 낚시꾼들을 저승길 동반자로 삼으려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다른 한 가능성은, 겁 많은 내 심사가 파도 때문에 부분적으로 더 짙어지는 어둠을 보면서 괜한 헛것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어렸을 적에도 문풍지 위에 어리는 마당의 나뭇가지가 거의 매일밤 내 머리맡으로 덥치는 탓에 근 보름을 울며 깬 적도 있긴 한다. 새벽에 물 마시러 부엌으로 나서다가 물기를 말리느라 뒤집어놓은 고무장갑에 혼비백산한 적도 있다.
어느 쪽이 됐든, 두려움과 공포의 근원은 같아 보인다. 두려움은 항상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겪어낸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결코 알 수 없는 존재와 세계에 대한 공포에 비길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미지의 세계, 곧 죽음과 사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야 말로 인간의 가장 큰 심연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믿음과 신앙을 말하는 것도 결국은 끝이 보이는 인간 삶, 그 너머에 알지 못하는 세계와 존재에 대한 경외 서린 공포가 아니겠는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적어도 구약에서는 나를 압도하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었다.
신약에서 우리는 친근하고 친밀한 사랑의 약속에 빠져들었지만, 여전히 영원한 생명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지옥벌의 상징을 통해 우리를 신앙으로 이끄는 힘이다. 예수님께 대한 깊은 사랑과 함께 그 사랑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는 두려움과 공포로 남고, 결국 사랑과 두려움 모두 신앙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
그런데, 어쨋든, 내가 본 그 낚시꾼도 자기 등 뒤쪽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힐끗거리는 것을 눈치채고 겁이 나서 그냥 철수한 다른 겁 많은 낚시꾼일 수도 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모자 위에 달아야 했던 작은 휴대용 전등을, 하늘로 향해 치켜진채 목에 걸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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