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지도자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이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 이른바 출세를 한 사람, 곧 권력자인가.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이 시대의 지도자는 함부로 권력을 향유하기가 어렵다. 함부로 권력을 향유하려는 지도자가 있으면 언론의 칼이 순식간에 그의 심장을 도려내 버릴 것이다. 이 시대의 지도자는 대부분 선출직이거니와, 선출직의 지도자는 늘 자기를 선출하는 사람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유권자들에게 보인 저자세를 생각해 보라.
선출직이 아닌 지도자, 곧 중앙 행정기관의 고급관리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중앙 행정기관의 고급 관리도 지방 행정기관을 방문할 때 그곳의 하급관리로부터 대접이나 향응을 받기가 힘들다. 대접이나 향응을 받은 것이 밝혀지면 온갖 언론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것이 뻔하다. 그러니 아직도 대접이나 향응을 요구하는 중앙 행정기관의 고급관리가 있다면 큰일이다. 보편적 가치나 질서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누구라도 지탄을 받기 마련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급관리의 고급관리에 대한 대접이나 향응이 없어진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민주화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이제는 모심과 섬김의 리더십을 갖지 않고서는 그가 속한 조직을 이끌기가 쉽지 않다. 지배와 억압의 리더십은 이미 끝난 지 오래라고 해야 맞다.
모심과 섬김
「논어」 위령 편에는 용서할 서(恕)와 관련하여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하라는 말이 나온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것이 이 말의 뜻이다. 공자의 이 말 역시 ‘나’보다 ‘남’을 배려하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남을 모시고 섬기는 마음 말이다. 유학에서는 특히 공(恭), 경(敬), 성(誠)을 강조하거니와, 이 또한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을 담고 있다. 정성스러움과 지극함을 다하는 진실하고 성실한 마음 말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모심과 섬김의 리더십이 나날의 일상에서까지 구현되고 있는 듯싶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받들던 행태가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 중심의 사고, 시민 중심의 사고가 보편화되었기 때문일까. 모심과 섬김의 리더십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데는 이 나라가 복지 중심의 정책을 펴고 있는 것도 한 몫을 했으리라. 최근에 들어 갑의 횡포에 맞선 을의 분노가 계속 주목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정당도 있고, 갑을이 상생하는 정책을 펴겠다는 정당도 있으니 모심과 섬김의 리더십이 충만해진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천도교에서는 사람(남)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사상을 중요하게 여겨온 바 있다.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사상은 남(사람) 사랑하기를 자기처럼 하지 않고서는 실천하기가 힘들다.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고 하거니와, 하늘을 공경하듯이 사람을 공경하는 일이 모심과 섬김의 리더십의 핵심내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의 사상과 함께 하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은 아마도 서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구체화된 듯싶다. 이때의 서학은 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사상을 가리킨다. 기독교와 관련된 영화를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성경의 요한복음 13장에는 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닦아준 이 얘기에는 매우 깊은 뜻이 들어 있다. 나로서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이나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이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유추해보기도 한다. 물론 이것의 사실 여부는 별로 중요치 않다. 예수께서 모심과 섬김의 정신을 매우 소중히 여겼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모심과 섬김의 리더십이 생활화된 지 오래라고 말은 했지만 그것이 정말로 보편화되어 있는지 어떤지는 잘 알 수 없다. 아직도 갑에 의한 을의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모심과 섬김의 리더십은 구호에 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글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심과 섬김의 리더십이 나날의 일상에서 보편화된 지 오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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