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여차저차로 살림이 쪼그라들어 살던 집을 내주고 한 칸 방으로 옮겼다. 사연은 궁금하지 않을 테니 하소연이나 하자면, 욕심과 우둔이 만나 미련과 경솔로 배가 불러 사고란 놈을 낳고, 우유부단의 젖으로 순식간에 몸을 불린 놈이 인사불성으로 설쳐 지금 이 꼴이 된 거다. 어쩌랴, 내 손으로 내 눈깔 찔렀으니. 당해 싸지. 짐을 추렸다. 보내고, 주고, 버리고, 포기하고, 떠맡기고. 한 칸에 놓이는 것만. 꼭 있어야하는 것만.
이참에 ‘청빈’을 흉내 내 볼까나. 애인삼아 둘 책 50권, CD 50장. 면적 당 손님수용한도의 접시와 컵. 가로세로 세 발짝 부엌에 들어가는 작은 냉장고, 작은 세탁기, 작은 밥 솥. 그렇게 여름 겨우 지나는데, 어, 뭐야? 해가 안 드는 거야? 뒤늦게 알아차린 오래된 사실. 헉헉거리고 비탈길은 왜 올라 온 거야? 온 동네를 눈 아래로 내려다보는 건 또 뭔데? 오늘은 흐려 그렇겠지.
그러나 곰곰이 다시 보니, 앞은 북이고 뒤는 축대라 하늘에서 햇살을 마구 퍼주어도 이 한 칸 방은 예외인 거다. 버림받은 거다. 건너 아파트는 저리도 환한데. 복 많은 인간은 따로 있구나. 야~너네, 좋겠다! 좋지? 참 좋겠다! 어두컴컴한 내 방의 창을 붙잡고 쉰 소리를 질렀다. 햇살 한 점 없는 긴긴 겨울, 십년지기 화초들이 죽어나가고 내 몸은 곰팡이 냄새로 퀴퀴해졌다.
그렇게 간신히 살아남아 다시 맞은 봄. 창틀에 뭔가 반짝였다. 햇살 같은데. 정말? 손을 내밀었다. 한줌 햇살이 손바닥에 담겼다. 해는 축대와 아파트 벽 그 좁은 사이로 햇살을 보내 창틀에 15cm 깊이로 두 어 시간 머물게 해 주었다. 가슴이 알싸하더니 왈칵 눈물이 솟았다. 나는 예외로 젖혀진 게 아니었다. 버림받지도 않았다. 햇살 받을 복도 없는 인간은 더더욱 아니었다. “너는 여러 가지를 걱정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예수님 말씀이다. 아이고, 아닙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선샤인! 선샤인 말입니다. 선샤인 없이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죽어서도 선샤인은 있어야 안 합니까? 그래야 안 헤매고 예수님을 찾지요. 안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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