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까지 호국보훈의 달만 되면 기자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스트레스의 주범은 다름 아닌 반공 포스터와 표어였다. 한국전쟁이 뭔지도 이해를 못한 나이에 북한군을 물리치는(?) 내용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겨웠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 당시 그렸던 포스터를 떠올리면 절로 웃음이 난다. 북한군을 한 번 본적도 없으면서, 그들 머리에 뿔을 달고 송곳니를 유난히 크게 그려 마치 도깨비를 연상케 했다. 포스터 배경색은 주로 빨간색으로 도배했다. 기자의 상상력이나 취향이 남다른 탓은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 그림 속 북한군도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반공 교육의 가르침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후에 북한 주민들이 우리와 같은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고 받은 충격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 시절에는 학교에서 조차 ‘평화’보다는 ‘대립’을 먼저 가르친 셈이다. 하지만 반공 교육이 사라진 이 시대에도 북한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통일의 필요성을 전혀 모르고 있거나 혹은 밑도 끝도 없는 적개심에 싸인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나마 의견이나 감정이 있는 이들은 나은 편에 속한다. 북한과 통일, 한반도 평화가 남 일인 듯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요즘에는 더 많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가 마련한 기도운동과 심포지엄, DMZ 평화의 길 순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이러한 무관심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도깨비가 아닌 우리와 같은 모습의 한 핏줄에게 관심을 갖고, 우리 모두가 기도로써 평화의 주춧돌이 되자는 것이다.
주교회의 민화위 위원장 이기헌 주교는 “한 형제이기 때문에 화해하고, 그리스도인이기에 포용해야한다”고 말했다. 화해와 포용 그리고 평화로 가는 길은 반공 포스터나 표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어렵지도 않다. 그저 마음 한 구석을 내어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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