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다른 건 다 실패했지만, 방울토마토 한 가지는 원 없이 따먹었다. 못해도 거진 300여 개는 충분히 땄다고 생각되는데, 크지는 않았어도 맛이 달기가 여간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옥상 텃밭을 시작했다.
그리도 야트막한 스트로폼 박스 속에서도 그리 넓고 빽빽하게 뿌리를 내리고서는, 이리저리 비틀어진 가지를 하고서도 그리 많은 열매를 내어준 방울토마토 다섯 그루가 고마워, 올해도 서둘러 모종을 사다가, 무려 열 다섯 그루나 좁은 화분과 박스 속에 우겨 넣었다.
사실 옥상은 식물들이 자라나기에 그다지 좋은 여건은 아니다. 널찍한 건물이라면 좀 낫겠지만, 신문사 건물이야 가로세로 그리 넓지도 길지도 않고, 방수 페인트를 해둔 것이 열을 가두는 기능을 하는지 햇빛 쨍쨍 내리는 오후면 흡사 찜통 같다.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께서 주의를 주시길, 옥상 채소는 걸핏하면 녹는다며 조금 자라면 얼른 잘라다가 밥 비벼 먹으라신다. 잠깐 한 눈 팔다 오후에 물을 주다보면, 잎새에 맺힌 물방울이 돋보기 역할을 해서 이파리를 태워먹기 일쑤다.
그래도 어쨌든 올해도 옥상 텃밭 농사를 다시 시작했고, 지난해 한 번 해봤던 덕인지 지금까진 뿌린 씨도 잘 트고, 옮겨 심은 모종도 무럭무럭 자란다. 눈에 띄는 대로 잡초도 뽑아주고, 벌레라도 낄라치면 이리저리 이파리를 뒤적거려 반드시 적발하고 만다. 나름 애 키우는 기분이다.
그런데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몇 가지 천성 같은 습관이 있다. 그것들은 곧 삶에 대한 태도와도 연관이 있어서, 생활과 사물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베란다 텃밭을 일구는 이들에게 자주 주어지는 경구인데도 불구하고, 우선, 자꾸 욕심을 부리게 된다. 스트로폼 박스나 조금 사치를 부려 돈 주고 산 번듯한 화분들. 가로 네 뼘에 세로 세 뼘 정도가 평균이고, 흙 한 푸대로 세 개를 채우는데, 그것들이 크면 얼마나 클까.
상추 열 포기 남짓이 적당한 박스에, 시루에 콩나물 키우듯 빽빽하게 채우니, 새싹일 때에야 파릇파릇 이쁘기만 해도, 조금 더 자라니 서로 밀치고 떼미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놈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댓잎을 따야 밥 한술을 싸먹는 정도에 그친다. 그저 욕심일 뿐이다.
욕심은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끊임없는 물 주기. 대개 이삼일에 한 번씩, 흥건하게 물 주기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겉흙이 조금 마른 것처럼만 보이면, 채소를 익사시킬 듯이 물을 준다. 옥상이 뜨겁다는게 괜시리 불안한 탓이기도 하지만, 물을 많이 주면 왠지 다음날에는 훌쩍 키가 큰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은 뿌리가 썩을 우려가 많다는데….
결국 이런 과잉은 수확에 대한 욕심 탓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무슨 작물 키워 내다 파는 전업 농부도 아니고, 그리도 욕심 낼 일이 아니고, 실제로 방울토마토처럼 오며 가며 따먹을 것들도 아닌데 뭘 그리 수확을 탐내는지. 스프로폼 박스가 한 열 댓개에 플라스틱 통이 여남은개, 거기에 크고 작은 화분들까지 채소들이 빼곡한데, 여전히 길거리에 박스가 보이면 손이 간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고, 아홉을 가지면 열을 채우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긴 하지만, 텃밭 일구는 일에까지 이리 욕심이 나대서야 어디 되겠는가. 채소들에게, 적당히 숨쉬는 공간을 틔워 주고, 적당히 목이 말라서 뿌리를 길게 뻗는 법도 익히도록 해주는 일은 채소에게만 아니라, 나에게도 삶의 지혜를 일궈주는 일인 듯하다. 어쩌면 이겨낼 법한 수난과 염려, 적당한 갈증과 허기로 우리가 깊고 넓게 뿌리를 뻗도록 하는 것이 씨를 뿌리시고 텃밭을 일구시는 하느님의 손길인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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