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상처
어떤 가족, 어느 민족이 아픔을 겪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던가? 내 삶을 돌이켜보건대 가장 큰 아픔은 20여 년 전 겪었고 그 여파는 지금도 내 삶에, 그리고 가족 모두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아직도 가끔씩 그 생채기가 덧나 마음이 힘들어지면 그 힘든 시절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기억하면서 지금까지 나에게 힘을 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너무나 유복한 집안이라 힘든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그저 시간나면 먹고 마시고 운동하고 여행가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삶이 무미건조하다고 한다. 어쩌면 아픔의 상처가 없기 때문에 기쁨과 행복의 순간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지난 60여 년의 우리 민족사는 가장 폭력적이고 비참했던 가족사의 연장 그 자체였다. 두 가족 구성원의 1/10이 싸움 중에 죽었고, 가진 재산을 다 날렸으며 그 후에도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며 싸움질을 하면서도 힘 있는 사람들은 누릴 것은 다 누렸다. 그저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아이들과 과부, 여성, 노인들만이 힘겹게 살아가거나 소리도 없이 쓰러져갔다. 도대체 우리 민족의 앞날에 한 가닥 희망이 보이기라도 하는 걸까? 도대체 서로 자존심만 내세우고 자기주장과 자기과시만 반복하는데 무엇이 제대로 될까라는 절망감과 좌절감이 팽배해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화해 경험과 가끔씩 찾아오는 대화의 가능성에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다. 남과 북의 주민들에게는 언제 행복과 평화가 오려나?
행복의 세 가지 요소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들로 ‘류보미르스키’(Lyubomirsky)는 유전적 요소, 삶의 조건, 그리고 개인의 의지적 활동 등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요소는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소들이다. 예를 들면 긍정적이고 유머가 많은 성격 혹은 타고난 건강 등이 행복의 50%를 좌우한다. 둘째 요인은 외부적인 여건들인데, 나이, 성별, 교육수준, 사회적 계층, 수입, 가족 및 자녀, 지능 수준, 신체적 매력 등이 행복의 10%를 좌우한다. 셋째 요인인 개인의 동기와 의지로 하는 자발적인 활동인데 이것이 행복의 40%를 좌우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의 행복수준은 우리가 쉽게 바꾸지 못하는 유전적인 요인이나 삶의 외부적 여건보다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의지적 활동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남북의 관계에 이 3가지 요인을 적용해보면, 남북의 유전자라 할 수 있는 역사적 경험이나 남북의 경제, 사회, 문화, 인구, 지리 등 외부적 조건 등은 우리가 쉽게 바꿀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남북이 서로 주체적으로 결정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남북 관계와 남북 주민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남북 주민 모두의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남북의 주체적 활동이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치유와 행복으로의 길
구약 ‘토빗기’를 보면 동포에게 자비를 베푼 후 눈이 먼 토빗의 기도와 신혼 초야에 남편 일곱 명을 잃은 사라의 기도가 하느님 앞에 도달한다. 천사 라파엘이 파견되어 토빗에게는 하느님의 빛을 다시 보게 하고 사라에게는 악한 귀신을 쫓아내어 토빗의 아들 토비야의 아내가 되게 하며 많은 재산을 물려받게 한다. 라파엘은 암흑 속에서 신음하는 토빗에게 “용기를 내십시오. 머지않아 하느님께서 고쳐 주실 것입니다. 용기를 내십시오”라고 격려한다.
남과 북은 마치 토빗처럼 눈도 멀고 사라처럼 수많은 남편을 악신으로부터 잃어버려 마음이 갈가리 찢어진 형국과 같다.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불신과 미움, 절망과 분노, 그리고 서로간의 싸움으로 점철되어 원수가 되어버렸다. 그러한 우리 민족에게 하느님의 천사는 끊임없이 “용기를 내어라, 머지않아 하느님께서 여러분들을 치유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격려한다. 우리 모두가 가난한 자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눈물로 호소하면서 기도한다면 치유자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속들이 살펴보시고 갈래갈래 찢어진 그 마음을 위로해주시리라. 그리하여 우리 안의 불신을 믿음으로, 미움을 용서로, 분노 대신 포용을, 싸움 대신 대화를 하도록 도와주실 것이고, 마침내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실 것이다.
“과부사정은 과부가 안다”는 속담처럼 아픔과 갈등, 밑바닥을 경험하고 이를 극복해본 사람만이 남의 아픈 상처도 치유할 수 있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 남북한의 쓰라린 경험과 갈등조차 세상에 도구로써 쓰이게 하시는 하느님의 크신 계획을 알게 될 날을 기대하면서 두 손을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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