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신앙과 믿음
사도 요한은 그가 복음서를 쓴 목적이 ‘사람들이 믿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기도 하고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앙인, 곧 ‘믿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일컫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은 첫째가는 덕목이자 은총이다.
은총이라는 면에서 믿음은 주어지는 선물의 성격을 갖지만, 덕목이라는 면에서는 힘써 얻어야 하는 의지와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것이 은총인 이유는 믿음도 사랑처럼 먼저 받아야 베푸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믿음을 지키고 살아내기 위해서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갓 태어나 아무 것도 보여주거나 증명할 수 없는 아기 때부터 주변의 많은 기대와 사랑을 받았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를 믿어주셨다. 갓 창조하신 벌거벗은 인류에게 온 세상을 맡기셨고, 타락하여 떠나간 그들이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믿고 당신의 외아드님을, 그분의 목숨을 맡기셨다. 그리고 지금도 아드님을 통해 시작된 구원을 완성할 사명을 교회와 인류에게 맡기실 정도로 우리를 믿어주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뜻을 따르는데 우리의 구원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믿음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더 큰 사랑과 굳건한 바람과 지칠 줄 모르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맹목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 아들은 절대 내가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직업과 삶을 택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내 욕망의 투사요, 강요이며 구속일 뿐이다. 그의 모든 선택을 존중하면서 진심어린 조언을 하고 설사 잘못된 길을 걷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것을 믿으며 마음의 고향이 되어 기다려 주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우리에게 믿음이란?
하느님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 세상을 움직여 주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결국에는 그런 기대에 맞춰 주는 점쟁이에게 가게 된다. 참된 믿음은 나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나를 성장시킨다. 한 사람에 대한 믿음도, 세상에 대한 믿음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모두 자기중심을 벗어나는 회개의 과정이 필요하다.
믿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7-18) 허황된 이야기로 들리는가?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서로를 가르고 다투게 하는 나쁜 생각과 싸울 수 있고 사람들을 모으고 화해시키는 비전을 말할 수 있다. 믿는 이들은 독을 품은 세상의 악의들과 마주쳐도 해를 입지 않는 힘을 지녔으며 의심에 지치고 병든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따스한 기운을 지닌다. 그들은 넘어져도 일어나고 상처를 입어도 오히려 남의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다.
원전 비리를 보면서, 재벌이나 정치인, 법조인, 공직자, 지식인들의 비리와 탈법 행위를 보면서 우리는 이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고 느낀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 곤란한 문제다. 믿음의 부재는 두려움과 불안을 낳고 사람들은 길을 잃는다. 상위 1%도 불안하고 전교 1등도 불안한 이 사회는 각박해져만 가는데, 우리를 구원할 믿음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차원의 미담을 통해 이런 불신에서 벗어날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자기 목숨을 걸고 물에 빠진 어린이나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해내는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나 평생 어렵게 살며 모은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쾌척한 할머니의 이야기 등은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준다.
사회적으로 두려움과 불안을 치유하고 믿음의 회복을 돕는 길은 복지정책의 확대일 것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나 자신의 실패와 몰락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부조리나 억울함을 함께 메워나간다는 안도감을 준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의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믿음에는 의지적인 투신 , 또는 도약(leap of faith)이 필요하다. 믿음이란 증명되지도 보장되지도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그런 믿음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끝까지 믿어야 한다. 거기에 구원의 문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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