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革)
대부분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의 성격이나 조건에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일까. 거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이나 조건을 바꾸고 싶어 한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성격이나 조건만이 아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 이들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의지는 젊은이들일수록 강하다. 젊은이들일수록 이상이 높고, 이상이 높을수록 불만이 높기 때문이다. 세상은 원래 불만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바뀌기 마련이다. 그들에 의해 끊임없이 혁신, 변혁, 혁명이 시도되어온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혁신, 변혁, 혁명…. 이들 단어의 핵심을 이루고 혁(革)은 명사로는 ‘가죽’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동사로는 ‘가죽으로 만들다’, ‘가죽으로 꾸미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때의 뜻이 전이되어 혁(革)은 ‘바꾸다’, ‘고치다’ 등의 동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무엇이든 갈고 다듬어 세련되고 정밀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성과 사랑이 필요하다. 세상을 혁신, 변혁, 혁명하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이 정성과 사랑이라는 뜻이다. 정성과 사랑이 없이 세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정성과 사랑은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하나이다. 다른 생명체 가운데 명실 공히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갖고 있는 존재는 없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수히 많은 마음이 들어 있다.
다시 물어 보자. 무엇이 세상을 바꾸는가.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의 마음이 세상을 바꾼다. 정작 젊은이들이 바꾸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사람의 마음 가운데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가. 비판인가. 야유인가. 견제인가. 핍박인가. 이들 심리기제는 투쟁으로 전이되기 쉽다. 투쟁?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내 투쟁이 세상을 바꿔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일찍이 신채호는 역사를 가리켜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 투쟁이 인생과 역사의 중요한 일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투쟁은 아(我)와 비아(非我) 사이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투쟁의 극단적인 형태는 전쟁이다. 전쟁도 세상을 바꾸는 방법의 하나이다. 실제로는 전쟁만큼 세상을 빠르게 바꾸는 방법도 없다. 그러나 전쟁은 이기든 지든 엄청난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지난 시기 남한과 북한 사이의 6ㆍ25 전쟁을 생각해 보라. 무려 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심각하지 않은가. 따라서 전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는 안하는 것만 못하다.
투쟁이나 전쟁은 이미 마음의 차원을 벗어나 존재한다. 물리적인 힘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투쟁과 전쟁이라는 뜻이다. 물리적인 힘이 동원된 투쟁이나 전쟁은 물질적인 파괴를 거느리는 법이다. 따라서 투쟁이나 전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는 상책이라고 하기 어렵다. 투쟁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전쟁은 사람들의 가슴에 폐허를 남긴다.
투쟁이나 전쟁은 상호 적대적인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런 점은 비판이나 야유, 견제나 핍박 등도 다를 바 없다. 물론 비판이나 야유, 견제나 핍박이 이루는 상호 적대적인 관계는 투쟁이나 전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상호 적대적인 관계가 약하든 강하든 투쟁이나 전쟁, 비판이나 야유 등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에는 주체에 의해 객체가 대상화되기 마련이다.
주체가 객체를 바꾸려고 할 때 객체가 대상화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주체가 객체가 되고 객체가 주체가 될 때도 얼마든지 변화는 가능하다. 주체가 객체가 되고 객체가 주체가 되는 일이야 말로 정성과 사랑이 실현되는 일이다. 정작의 변화는 오히려 정성과 사랑이 실현될 때 가능해진다. 주체와 객체 사이에 정성과 사랑이 실현되는 일은 각각의 결핍을 채우는 일이기도 하다.
정성과 사랑은 모든 종교적인 천재들이 주창해온 사람살이의 바른 가치이다. 예수는 물론이거니와, 석가와 공자도 정성과 사랑으로 바꾸는 세상, 정성과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꿈꾸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정성과 사랑의 실현은 칭찬과 감탄의 형식으로 나타나기 쉽다. 칭찬과 감탄은 사랑과 정성이 풍부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심리기제이다. 무엇이 세상을 바꾸는가. 칭찬과 감탄이 세상을 바꾼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칭찬과 감탄이다. 상대보다 낮은 자세, 낮은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칭찬과 감탄이다.
칭찬과 감탄을 경험하게 되면 누구나 자신이 세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을 갖게 된다. 칭찬과 감탄을 경험할 때 사람들은 세상이 원하는 쪽으로 저 자신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다. 성공의 체험은 성공을 만들고, 실패의 체험은 실패를 만든다. 안창호의 말처럼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리고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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