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 죄악의 국제 수준
영국 BBC 방송이 발행하는 잡지 `포커스'가 세계 35개국을 대상으로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정욕, 탐식, 탐욕, 나태, 분노, 시기, 교만의 7가지 죄악을 얼마나 많이 저지르고 있는지를 분석한 적이 있다. 7대 죄악을 국가별로 순위를 매긴 결과 부끄럽게도 한국이 정욕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욕은 포르노산업에 대한 국민 1인당 연간 지출액을 기준으로 측정한 것이다. 탐식은 패스트푸드에 대한 국민 1인당 연간 지출액을 따졌고, 탐욕은 연간소득이 평균치의 50%에 못 미치는 저소득층의 비율을 기준으로 각국 수준을 평가했다. 나태는 봉급생활자 1000명 당 연간 총 결근일수, 분노는 폭행, 성폭행, 살인 등 폭력범죄 발생률, 시기는 가택침입 절도, 강도, 자동차 절도 등의 발생률, 국민적 자부심과 개인적 허영(국민 1인당 성형수술 시술 건수) 등을 기준으로 평가했다. 잡지는 7대 죄악에 대한 `종합 순위'도 매겼는데, 한국은 15점을 받아 세계에서 8번째로 `죄를 많이 짓는 나라'에 이름을 올렸다. 이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국가의 품격
사무엘 스마일즈는 <인격론>에서 국가의 품격은 국민의 인격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국가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성장하지 않으며 구성원 전체가 발전할 때 성장한다. 한 나라의 특성은 명망 있는 지도층이나 지성인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국민 수준이 그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수준이 되지 못하면 그 제도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1948년 헌법을 세울 때부터 헌법상으로는 민주공화국이지만 1987년에 이르러서야 국민들의 시민의식이 높아져 민주화투쟁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아직도 각처에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고지는 저만치 멀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정부 고위관리들 및 지도층 인사들의 부정부패와 비리, 그리고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보노라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준법정신뿐 아니라 도덕성과 윤리도 우리가 원조하는 개발도상국보다도 낮은 50위권 이하라는 참으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한 나라의 준법성, 도덕성 및 윤리를 결정짓는 것은 국민 개개인이다. 일반 국민 모두가 품위와 교양, 그리고 양심적이고 도덕적이고 건전한 습관을 갖고 있다면 자연스레 정직하고 도덕적인 나라가 되어 국격이 높아질 것이다. 언론 장악을 통해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정치가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여론을 조작하는 국정원 및 대기업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방법 역시 의식 있고 청렴한 한 개인의 성품에 달려 있다. 10여 년 전 감사원의 김문옥 감사관은 자신의 목을 걸고 감사원의 비리를 알림으로써 단 한명의 양심 있는 공직자가 공직사회를 맑게 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국격 향상의 책무
우리 국민들은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지난 1960~70년대에 근면함과 성실, 인내 그리고 오랜 노력을 통해 1인당 GNP 100달러 수준에서 2010년대 2만 달러를 넘어서는 기적을 이뤄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선망하는 나라가 되었다. 또한 1987년 민주화혁명으로 군사독재 국가란 오명을 벗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인 성취와 정치적인 민주화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 지난 10여년 간 한류는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유럽, 호주 및 아메리카 대륙 등 다양한 문화권으로 전파되어 이들 나라에서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즐기고, 한글을 배우고 있으며, 나아가 하나의 문화로서 한류를 모방하고 있다. 이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국가적인 지원이 아닌 개인의 탁월성이 합쳐서 국가의 품격을 높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국가의 품격이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국민의식은 아직도 경제적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뒤떨어져 있다. 탐욕, 정욕, 시기, 권력욕 등 대부분의 욕심은 불법과 부정, 비리의 원인이 된다. 어떻게 하면 세계 8위의 죄 많이 짓는 나라란 오명을 벗어날 수 있을까? 국민들의 도덕의식을 기르고 자아완성을 위해 도와주며 나아가 공동선이 실현되는 사회로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품격을 올리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고 할 수 있다.
국격이 회자되는 이 시대에 150년 전 스마일즈의 주장은 더욱 우리에게 와 닿는다. “진실함, 정직함, 성실함, 공평함의 미덕을 더 이상 찬미하지도 행동으로 옮기지도 않는 국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리고 부로 인해 부패하고 쾌락으로 타락하고 당쟁으로 이성을 잃은 국가에서 성실한 사람들-그런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면-이 서로 힘을 합쳐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할 때 그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은 국민들 개개인이 고귀한 성품을 되찾아 더욱 발전시키는 것뿐이다. 그 길만이 국가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빗나간 탐욕을 바로잡는 것은 다름 아닌 진실과 정직, 공평함의 미덕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이다. 개인을 사람답게, 사회를 인간 사회답게 만드는 것이 공동선을 지향한 국가의 역할이다(사목헌장 26항 참조). 그리고 국가기관과 정치인들이 이를 짓밟는 경우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힘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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