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주교회의에서는 연방 대법원이 이른바 ‘결혼 보호법’ 규정이 위헌이라고 판결한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이 법은 결혼을 이성간의 결합, 즉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법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동성 결합을 사회적이고 법적으로 공인받은 부부의 위치에서 제외하는 어떠한 법적 조건도 제거한 것으로, 이는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된 사회의 가치관과 세속의 법과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분야가 성과 생명윤리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낙태와 인공수정의 문제가 그러하고, 사형제도와 안락사의 문제가 그러하다. 생명과학의 발달이 극도의 상업주의와 결탁함으로써 야기되는, 줄기세포를 둘러싼 논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둘러싼 논쟁의 추이를 살펴보면, 세상이 종교적 확신의 영역으로부터 점점 더 광범위하게 벗어나고 있는, 세속화의 추세가 윤리적 영역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생명과 인간 존엄성 수호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짐직한 교회의 노력도 적어도 현상적이고 통계적으로만 살펴보면, 점점 열세에 몰리는 듯하다.
적어도 그리스도교적인 신념과 생활 방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 미국에서도 생명윤리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교회의 목소리는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하물며 그리스도교적 뿌리가 일천하고, 타종교에 비해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위신이 높은 편이지만 여전히 종교적 신념이 정치, 사회적 논리와 거의 완전하게 분리돼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생명윤리 가르침은 단지 종교 내부적 가르침으로만 치부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교회 외부의 인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이 봉착하고 있는 어려움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가장 솔직하게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조차 교회의 가르침에 전적이고 실천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여러 조사를 통해서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졌지만, 낙태, 인공수정, 피임, 동성애 등 생명윤리와 관련, 첨예한 대치를 하고 있는 문제들에 있어서 가톨릭 신자들의 실천적 수용은 비신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고, 때로는 오히려 더 심각한 지경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 밖의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면서도, 정작 교회 안의 사람들에게는 그 목소리가 수용되지 않는 심각한 현실이다. 가르치는 바가 실천되지 못하는 현실은 딜레마이다.
교회의 생명윤리 가르침이 처한 딜레마의 상황은 현실에 대한 정상 참작의 여지에서도 나온다. 서구 사회에서, 동성애적 성향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의 비중과 수는 결코 적지 않다. 일부 극소수의 ‘질환적’ 상태에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 역시 동성애가 단순히 윤리적 타락의 소치라고 여기지는 않으며, 그것이 본인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질환’과 비슷한 어떤 것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교회는 동성애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는 별도로 동성애적 성향을 지닌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곤 한다. 이 역시 딜레마의 상황이다.
이래저래 교회가 해결해야 할 생명윤리의 과제들은 난감하기 이를데 없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여성사제나 사제 독신제에 대한, 특히 서구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다양한 주장과 요구들 만큼이나 생명의 소중함,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딜레마의 상황과 해결 난망의 과제들을 안고 있다. 사실 많이 답답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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