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모 출판사가 신문에 전면 광고를 낸 적이 있다. 한문학을 번역한 100권짜리 책인데 70권을 찍고 났더니 돈이 모자란다나, 책은 70권 만 받고 돈은 제발 100권 어치를 주면 그 돈으로 마저 찍어서 나머지 30권은 연말에 꼭 부쳐 준다는 거였다. 그 자리에서 전화 했다.
설마 돈이 남아돌아서겠는가, 한문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다. 출판사의 몸부림에 찡하긴 했지만 그렇게 저지른 데에는 좀 엉뚱한 이유가 있었다.
나와 동갑인 그 책의 번역자는 30년 동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했다 한다. 같은 나이인데, 새벽 5시에 일어난 그는 두 손에 보람이 그득하고 그래 본 적이 없는 나는 그저 빈손이다. 샘나지만 너무 멋진 그에게 박수 보내며, 쓰여 본 적이 없는 나의 새벽 5시에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그랬다.
새벽 5시! 글자 자체에서 빛이 나지 않는가. 내겐 난공불락의 시간 새벽 5시. 얼마나 많이 상상했던가, 5시에 일어나서 6시에 미사가고, 7시에 기도하고, 8시에 아침을 먹는 나의 눈부신 모습을.
‘아침형 인간만 인간이냐, 저녁형 인간도 인간이다!’ 물론, 맞는 말인데, 새벽 5시가 내는 빛 앞에선 왜 그런지 맥을 못 춘다.
‘아, 또 늦잠’ 하고 시작되는 하루에서 뭐가 나오랴. 내 안의 어둠에 갇혀 세상과 돌아앉은 무색무미무취의 날들. 내적 열정 없는. 아무 의욕 없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즐길 의욕”도 없는. 이건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표현이라 따옴표 안에 넣었지만 사실은 나도 잘 쓰는 말이다.
<윌든>의 저자 소로가 그랬다. ‘수탁들이 일어나 투명하고 날카로운 함성을 지르면, 그 소리를 듣고 날마다 점점 더 일찍 일어난다면 누구나 더 할 나위없는 건강과 풍요로움과 현명함을 얻을 수 있다’고.
아, 새벽 5시! 과연 나도 ‘날마다 점점 더 일찍 일어나서’ 너의 빛 속에 ‘풍요롭고 현명’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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