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서의 7일
지난 한 주를 지구 반대편, 브라질 상파울루 근교의 한 피정의 집에서 지냈다. 아미깔이라고 부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선교하는 한국 선교사들의 모임에 참가한 것이다. 나는 해외 선교를 하고 있지도, 해본 적도 없지만 내가 맡고 있는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 지부에서 이 모임과 선교사들의 사업을 후원하고 있는 관계로 함께 할 수 있었다. 이 모임에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를 포함하는 180여명의 선교사들이 등록되어 있으며, 파악되지 않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200명 이상의 한국 선교사들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선교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번 만남에는 90명 정도가 참석하였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이 연례 모임은 피정과 선교 체험의 나눔으로 진행되었고, 낯선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던 선교사들은 말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과의 만남에 물을 만난 물고기들인 양 즐거워하였다.
중곡동 사무실에서도 한국을 방문하는 귀한 시간을 쪼개어 찾아와 주는 선교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들이 찍어 온 사진이나 동영상에 대한 설명도 듣고, 이런 이야기들을 한국 교회의 신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눔으로써, 나와 한국 교회의 많은 신자들이 간접적으로라도 해외 선교라는 귀한 소명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이번 모임에 참석한 것도 물질적인 지원 뿐 아니라 그 소명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선교사의 소명
선교지의 삶에 대해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낯설게 느껴진다. 마치 수십 년을 알고 지내던 친구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것처럼,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삶의 조건과 현실이 그곳에서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선교지에서 마주치는 현실은 더 이상 나의 삶의 방식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것은 우리의 세상에서 무언가 조금 부족하고 잘못된 그런 세상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선교사들은 가난과 굶주림, 질병과 무지, 근친상간을 비롯한 성적인 문란함과 어린 미혼모들, 마약과 폭력과 부정부패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삶의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다. 이것이 내가 여태껏 살아온 바로 그 세상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선교지에서의 삶은 선교사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선교의 핵심은 아마도 그들이 하는 사업이 아니라 바로 이 변화를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소명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찾고 만들어가는 여정인 것처럼.
우리의 직업이나 일이 각자의 삶과 가치관을 펼치는 자리와 도구가 되는 것처럼 선교사들의 일도 그들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나누고 살아가는 도구가 된다. 선교사들은 선교지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도우려고 애쓰는 과정을 통해 그들을 자기 삶에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에 받아들여진다. 그 가운데에서 아마도 더 큰 삶, 더 깊은 삶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다른 세상이 만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한 세상 안에서 필요한 것보다 더 큰 사랑이 필요하고 또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마태 5,46)는 말씀대로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려고 한다. 하지만 선교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사랑하는 삶으로 부름 받았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사랑, 자기를 버리는 큰 사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이 여기에서, 그들의 노력 속에서, 그들의 고민 속에서, 그들의 악전고투 속에서 자라난다.
우리는 그들이 길러내는 그 사랑을 배워야 한다. 이 좁고 고만고만한 세상 안에서도 서로를 일부러 배척하고 가르고 외면하고 불통하는 우리는, 그들의 삶에 어떻게든 다가가서 그 삶을 배워야 한다. 선교사들은 하나 같이 가르치고 도우러 가서는 배우고 도움을 받는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선교에 관심을 갖고 선교사들을 도울 때, 정작 꼭 필요한 도움을 받고 우리가 갈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요, 우리 교회이며, 이 세상인 것이다. 그 놀라운 소명을 택한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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