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장마철이나 태풍이 올 때면 예외없이 이어지는 수해지역 취재는 긴박한 현장 취재가 드문 우리 신문사의 특성상 나름 긴장감 넘치는 취재꺼리였다. 하지만 꽤 고달픈 업무이기도 했다.
정확히 언제였던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한번은 수해지역을 찾아 수재민들을 위로하고 생필품을 전달하는 주교님들을 쫓아다니면서 이모저모를 취재했던 적이 있다. 신혼초 벌이가 시원찮은 탓에 작은 경차 하나를 끌고 다녔다. 그런데, 사회복지회와 주교님 차는 사륜구동, 힘 좋은 오프로드용 짚차.
연이은 폭우로 군데군데 무너진 산길과 웅덩이를 잘도 타고 넘어가는 어르신들 차에 비해, 기자가 탄 차는 조금만 흙이 쌓여 있어도 배를 ‘까기’ 일쑤고 찰랑찰랑한 웅덩이는 차마 넘지 못하고 잠수하고 만다.
다행히 코너링을 할 때 장갑 낀 손으로 도로를 짚으면 될 정도로 차가 워낙 가벼워, 웅덩이에 빠질 때마다 둘이서 차를 번쩍 들어 옆으로 옮겨서 다시 타곤 했다면, 사람들은 믿을까? 어찌됐든 홍수든 산불이든 사람이 다치고 재산이 상하는 재해 취재는 어렵고 슬픈 일이다.
역시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난히 가슴이 아팠던 취재가 있었다. 열흘이나 이어진 폭우로 침수된 저지대 밀집 가옥에 취재를 갔었다. 원체 비가 많이 왔고, 하천 가운데 모래톱에 하나둘씩 무허가로 지어진 집들이라 하천물이 넘치면서 천장까지 물이 차버렸다.
화장실이 수세식이 아닌, ‘푸세식’인지라 물이 들이치고 차오르면서 온 방안에 오물이 뒤범벅이 됐다. 물이 빠지고 난 뒤, 청소를 하느라고 수도호스를 벽에 대고 뿌리는데, 가슴 곳곳이 숨벙숨벙 구멍이 나는 듯 아려왔다. 세찬 수돗물이 닿는 벽마다 녹아내리듯이 구멍이 숭숭 뚫린다.
수년 동안 오물 섞인 물이 차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벽이 삭아서 견디지를 못하는 것이다. ‘어쩌나 어쩌나...’ 하시는 피골이 상접한 할머니 어깨를 붙잡고 기자는 대체 뭐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삭아버린 벽 안에서 더 이상은 거주할 수 없을 듯 싶었다. 그렇다고 달리 옮길 곳도 없으시단다.
왜 재해는 꼭 가난한 이들에게 오는지... 불치병은 왜 돈이 없어서 병원 치료는 엄두도 못내는 가난한 사람들만 걸리는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불행과 불운의 마수가 가난한 이들에게 치명적인 것은 분명하다. 견디어낼 힘이 없기에 더 큰 재난이 되고 만다.
사실 재해의 피해자는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무방비로 재해의 위험에 노출된 이들은 산간벽지나 침수지역의 농민이나, 태풍다발지역의 어민, 비만 오면 잠을 설치는 반지하 서민들, 얼기설기 지어놓은 무허가 주택의 빈민들이다.
어느 나라나 이런 현상은 비슷한 듯하다. 선진국 미국, 태풍 카트리나 강타 이후 피해와 대처에서 인종 차별과 빈부 격차의 모순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해 7월 중국 북경의 태풍 피해 상황 역시 저지대, 좁은 지하 셋방에서 사는 가난한 이들이 대부분의 피해자들이었다.
재해의 피해를 덜 받는 곳에서 살 수 있는 것도 복이다. 떠밀리고 밀려서, 비만 오면 물이 차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런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웃들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내 집과 그 집을 바꾸지는 못해도 관심과 걱정, 그리고 실천적인 도움의 자세는 돼 있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비가 와도, 태풍이 불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 없는 복을 감사하게 여기면서 피해가 나면 도움의 손길을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 정책적으로 달리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면 나라에 그리 말해주는 것 정도는 우리의 일상적 관심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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