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지금 등이 몹시 가렵다. 긴 코가 척하고 등에 닿는 코끼리나, 숱 많은 꼬리로 가려운 등을 탁탁 쳐대는 말이 부럽기만 하다. 코 긴 놈, 꼬리 숱 많은 놈, 진짜 좋겠다. 소는 여전히 미치게 등이 가렵다. 비벼 보면? 어디 좀 기대서 벅벅-. 그래, 그거다, 비빌 언덕! 어디 있지? 저건가? 어떻게 가지? 물음표가 소를 향해 떼로 덤빈다. 언덕 맞긴 맞아? 길이 있을까? 비벼지긴 해? 과연 시원 할까? 소는 눈만 끔벅인다. 아무도 모른다, 눈만 끔벅이는 소의 심정을.
요즘 내가 딱 그 소 꼴이다. 문서에는 없지만 연극판에 돌아다니는 말이 있다. “쪽박 차고 싶은가? 연극제작 두 편만 하라” 쪽박? 무슨 그런 이상한 말씀을. 나름의 성공예감과 사명감으로 중무장한다. 크~! 감동을 줄 거니까. 이 칙칙한 세상에 한 점 꽃이 될 거니까. “노후 생각도 하시지!” 주위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고 그예 일을 벌이고 예정대로 얌전하게 첫 편을 말아먹는다. 남의 다리 긁었나? 철학의 부재였나? 역시 홍보부족이었지? 고통스런 침묵 후. 좋아! 이번엔! ‘과부딸라이자’까지 내서 두 번째로 일을 저지르고 예언대로 과연 쪽박을 찬다.
이번 9월, 재작년에 이어 두 번째의 성극제작을 한다. 등 가려운 소만큼 나도 물음표가 많다. 스마트폰 세상에 뭔 성극? 누가 봐? 극장, 연습장, 의상비, 작곡료는? 열 명 배우 캐라는? 꿍쳐둔 돈이라도 있나봐? 이제 물음표는 아예 4열종대로 조를 짜서 덤빈다. 갑자기 웬 성극타령? 성극을 누가 기획해주니? 주일학교 성탄행사 해? 혹시 대학로에서 못 뜬 한 풀이? 도대체 성극이 왜 하고 싶어? 왜? 물음표의 극성에 머리에서 김이 난다.
끔벅이던 눈이 저 혼자 성모상으로 간다. 성모님이야 그저 떫! 하고 서 계실 뿐이다. 괜히 꾸벅 절하고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이윽고 조신하게 여쭙는다.
“마마, 언덕만 있으면 비빌 수 있다 하더이다. 소첩 덕이 부족하오나 마마의 은덕으로 요행 언덕을 만나 비비기만 하면 물음표들은 다 나가떨어질 것 아니옵니까. 하오나, 어디에 있사온지요? 언덕 말이옵니다. 제가 비빌 언덕 말이옵니다. 마마! 통촉하오소서! 마마! 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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