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방법원이 낙태죄로 기소된 의사들에 대해서 이른바 ‘사실상 낙태가 용인되어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로 선고유예와 형의 면제를 판결한데 대해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이 판결은 법의 사회적 책임, 그리고 법 적용과 법에 따른 올바른 시민사회의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법부의 책임을 방기한 판단이다.
우리 형법은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낙태를 용인하는 조항을 두고 있어, 교회는 뜻있는 시민들과 양심적인 시민단체들과 함께 해당 조항에 대한 폐지 운동을 수십년 동안 펼쳐왔다. 교회의 이러한 목소리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존중, 특히 자신을 방어할 어떤 수단도 목소리도 없는 가장 약한 존재에 대해서 어떠한 이유로도 그 생명권을 박탈할 권리가 없다는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번 판결은 우선 인간 생명의 존엄성, 인권의 가장 기초인 생명권에 대한 침해인 낙태죄에 대해서 들어야 하는 양심의 소리에 완전히 귀를 닫은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 법에 포함된, 인간 생명에 관련된 독소 조항을 담고 있는 모자보건법의 폐지는 모든 이의 생명권에 대한 차별 없는 존중을 천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태아의 살해는 어떤 경우든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이러한 원칙,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자연법적인 원칙의 기반을 송두리채 뒤엎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실상’ 낙태가 만연해 있고, 이에 대한 양심의 거리낌 조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사실상’의 현실이 우리 삶이 바탕을 두어야 하는 윤리적 원칙, 기본적인 인간 삶의 원리조차도 부정하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논리라면, 살인이 만연하면, 살인의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인가? 자동차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해서, 신호를 위반하거나 과속하는 차의 범법성이 용납될 수 있다는 것인가? 오히려 불의와 불법이 만연하면, 더 엄정한 법 적용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사법적 판단이 무책임할 때 극심해질 사회적 해악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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